Camiael Studio
작품 소개로11화 · 소설

온 것

종업(겨울방학)이 코앞. 이안이 "이 학기만 마치겠다"던 그 학기가 끝나 간다. 미결을 못 견디던 이서가 얼마 전 그 서류가 '안 온 것'에 안도했는데, 오늘 학생회 담당인 이서의 손에 그 서류가 온다. 이안이 결국 전학 신청서를 냈다. 떠남이 확정된다. 이서는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정확히 관찰한다. '왜를 못 풀어 조급한 것'과 '그가 떠나는 걸 안 보고 싶은 것'이 다른 두 마음임을 분간한다. 그러나 그 두 번째 마음의 이름은 끝내 안 붙인다. WHY는 여전히 미궁.

안 오길 바라던 것이, 결국 왔다.

세상에 그런 게 있다. 오면 안 되는데 오고, 안 왔으면 싶은데 기어이 도착하는 것. 나는 오늘, 내 손으로 그걸 받았다.


학기말이었다.

종업이 코앞이었고, 교실마다 마무리 분위기였다. 콩쿠르 결과가 나오고, 미술실 쪽엔 전시 준비로 사람이 오갔다. 다들 방학을 앞두고 조금 들떠 있었다. 나만 빼고. 나는 이 학기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으니까.

차이안은 '이 학기만 마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나는 서류의 정황으로 읽어냈다. 그러니 이 학기가 끝나면, 그는 떠난다. 방학이 오면 그가 미뤄온 전학 서류도 더는 못 미룰 것이다. 카운트다운이 실제로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를 며칠째 혼자 듣고 있었다.

미결을 못 견디는 나는, 그가 떠나기 전에 '왜'를 못 풀면 그 칸이 영영 안 닫힌다는 걸 안다. 그래서 조급했다. 더 늦기 전에 붙잡고 물어야 한다고. 그런데 동시에, 나는 그 서류가 오는 걸 안 보고 싶었다. 그가 진짜로 사라진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 봐. 조급함과 회피가 같은 무게로 팽팽했다. 나는 그걸 '흔들림'이 아니라 '미제 서류 처리'라고, 그렇게 각주를 달아 덮으며 학기말을 버텼다.


그날, 나는 마음을 먹었다.

더는 못 미루겠다고. 그를 붙잡고 직접 묻겠다고. 왜 나를 봤는지, 왜 떠나는지, 왜 하필 나한테만 그렇게 딱딱했는지. 시한이 코앞이니까, 이번엔 명분도 없이, 그냥 물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복도에서 그를 마주 세웠다.

그런데 막상 그 앞에 서니, 입이 안 떨어졌다.

준비한 질문들이 목 앞에서 다 걸렸다. '왜'라는 한 글자가,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그를 붙잡고 물으면, 그 대답이 무엇이든 나는 흔들릴 거였다. 흔들리는 게 무서워서, 나는 결국 아무것도 못 물었다. "...서류." 그 한마디만 겨우 나왔다. 담당자의 톤으로. 그는 나를 잠깐 보더니, 여느 때처럼 짧게 답했다. "알아." 그러고는 지나갔다. 나는 그를 못 붙잡았다. 용기라는 건, 결심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오후에, 그 서류가 왔다.

학생회 접수 업무 중이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접수함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 오늘 새로 들어온 서류들 사이에, 그게 있었다. 전학 신청서. 이름 칸에 또박또박 적힌 세 글자. 차이안.

그는 결국, 냈다.

나는 그 종이를 한참 들고 있었다. 손끝이 식었다. 며칠 전, 이 서류가 오지 않았던 그날, 나는 안도했다. 미결이 남아 다행이라고, 아직 시간을 벌었다고. 그런데 오늘, 그 서류가 왔다. 안 오길 바라던 게, 하필 내 손에 왔다. 담당자가 나였으니까. 그가 사라지는 걸, 나는 내 손으로 접수하게 됐다. 내가 줄곧 두려워하던 그 일이, 오늘 정확히 일어났다.

유예가 끝났다.


그 종이를 든 채,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똑바로 관찰했다.

늘 남만 관찰하던 눈을, 이번엔 도망 못 치게 나한테 고정했다. 한이서, 너는 지금 뭐가 이렇게 힘든 거야.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두 개를 따로 떼어 봤다.

하나는 조급함이었다. 그가 떠나면 '왜'를 영영 못 푼다. 미결이 닫히지 않은 채 평생 남는다. 미결을 못 견디는 나한테, 그건 견디기 힘든 일이다. 이건 내가 아는 나다. 익숙한 나.

그런데 그 아래에, 다른 게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왜를 못 푸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설령 '왜'를 다 안다 해도 남을, 그런 마음. 그가 떠나는 걸, 그냥 안 보고 싶은 마음. 그가 없는 교실을, 그가 없는 복도를, 상상하고 싶지 않은 마음. 이건 미결하고는 상관없는 거였다. 미결은 정보의 문제인데, 이건 정보가 아니었다.

나는 그 두 개가 다른 거라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지금껏 나는 그 둘을 '미결 처리'라는 한 단어로 뭉쳐 놨었다. 그런데 오늘, 그것들이 두 개로 갈라졌다. 조급함과, 그리고 이름 모를 그 두 번째 것.


그 두 번째 것의 이름을, 나는 끝내 안 붙였다.

거기까지가 오늘의 나였다. 두 마음이 다르다는 것까지는 봤는데, 그 두 번째 마음이 뭔지는 안 봤다. 아니, 못 봤다. 그걸 보려고 하면, 서랍이 아니라 내가 통째로 열릴 것 같았다. 나는 남의 마음엔 그렇게 이름을 잘 붙이면서, 이 마음 앞에서만 이름표를 손에 들고 서 있었다. 붙이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로.

그가 나를 봤다는 건 안다. 며칠째, 어쩌면 그 전부터. 이유는 모르지만, 그 눈은 아무나 보는 눈이 아니었다. 이 학교에서, 계산 없이 나를 그렇게 오래 본 사람은 그 애 하나였다. 도하의 친절은 '그냥'이었고 아무한테나였는데, 그 애의 시선만은 나한테로만 왔다. 그런 사람이, 이제 떠난다. 나를 왜 봤는지 안 알려 준 채로. 봐 준 유일한 사람이 사라지는데, 그 이유조차 못 들은 채 보내는 것. 그게 미결이라서 힘든 건지, 아니면 다른 것 때문에 힘든 건지, 나는 오늘도 거기서 멈췄다.


떠난다는 말은, 나한테 특별히 아픈 단어다.

나는 사람이 떠나는 걸 어릴 때 실컷 봤다. 아버지 사업이 기울었을 때, 그렇게 자주 웃으며 우리 집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발길을 끊었다. 나는 그때 배웠다. 사람은 계산이 맞을 때만 곁에 있고, 계산이 어긋나면 떠난다고. 그래서 나는 아무한테도 곁을 안 줬다. 어차피 떠날 사람들한테 마음을 주는 건, 미리 손해를 확정하는 짓이니까. 떠나는 건 늘 상대의 계산 문제였고, 나는 그 계산을 먼저 읽어서 안 다치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이 애의 떠남은, 그 계산으로 안 읽혔다.

이 애는 내 곁에서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 나한테 뭘 바란 적도 없다. 계산이 없으니, 계산이 어긋나서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처음부터 떠나기로 되어 있던 사람이 떠나는 거였다. 내가 아는 '떠남'의 공식에, 이 애는 안 맞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계산으로 떠나는 사람은 미리 대비할 수 있는데, 계산 없이 떠나는 사람은 대비할 데가 없었다. 나는 그 애가 왜 왔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다 못 막고 그냥 보고만 있어야 했다. 통제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제일 못 견디는 상태. 그런데 이번엔, 그 통제 불능이 무섭기만 한 게 아니라 어딘가 아팠다. 그 차이를, 나는 오늘 처음 느꼈다.


미술실 쪽을 지날 때, 나는 낯선 걸 하나 봤다.

가을이, 그 전학생 근처를 맴돌고 있었다. 늘 그림에만 빠져 아무도 안 보던 애가, 오늘은 그 애 쪽으로 몇 번이나 눈을 주고, 다가갈 듯 말 듯 발끝을 옮겼다. 스케치북을 손에 꼭 쥔 채로. 그런데 결국 다가가진 못하고, 반 발짝 앞에서 멈춰 서서 도로 돌아섰다. 나는 그걸 보며 잠깐 이상했다. 저 애도, 저 전학생한테 뭔가 있는 걸까. 나는 그 애 속을 못 읽으니까 확신은 못 했다. 다만 다가가려다 못 다가가는 그 발끝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나도 오늘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 근처엔, 도하가 있었다. 오늘도 가을 쪽으로 눈이 새면서, 다가가진 못했다. 다들 그랬다. 나도, 가을도, 도하도. 각자 다가가고 싶은 쪽을 두고, 발끝만 옮기다 도로 돌아섰다. 이 학교엔 오늘, 못 다가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도하가 지나가다 나를 불렀다.

"야, 한이서. 이거." 또 이름 없이, 캔 하나. "학기말이라 정신없지. 이거 마셔." 나는 받았다. 가방 안에 안 마신 캔이 이제 넷이 됐다. 넷. 나는 여전히 그걸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했다. 오늘은 그 캔이, 이상하게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손안에 있는 건 도하의 캔인데, 머릿속엔 온통 아까 접수한 그 서류 한 장이었다.

나는 그 대비가 이상했다. 도하는 이렇게 매번 이름도 없이 나한테 뭔가를 주는데, 나는 그걸 하나도 안 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애는, 나한테 아무것도 안 주고 떠나는데, 나는 그 하나를 종일 세고 있었다. 준 사람은 안 세고, 안 준 사람은 세는 것.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오늘도 안 물었다.

마음이라는 건 이상하게 셈이 거꾸로였다. 많이 받은 쪽이 아니라, 못 받은 쪽으로 자꾸 기운다. 넉넉히 주는 사람은 당연하게 여기고, 아무것도 안 주고 가는 사람은 오래 붙잡는다. 나는 늘 손해를 미리 계산해서 안 다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인데, 마음의 셈만은 그 계산이 하나도 안 맞았다. 손해가 뻔한 쪽으로, 나는 오늘 종일 기울어 있었다. 계산을 제일 잘하는 내가, 계산이 제일 안 되는 곳에 서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오늘 온 것과 안 온 것을 셌다.

온 것은 서류였다. 안 오길 바라던 그 종이가, 결국 내 손에 왔다. 그가 떠난다는 확정이 왔고, 유예의 끝이 왔고, 내가 그를 붙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왔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 내 안에서 온 게 있었다. 두 마음이 다르다는 자각. 조급함과, 이름 모를 그 두 번째 것. 그건 오늘 처음 나한테 왔다.

안 온 것은, 그 두 번째 마음의 이름이었다. 그건 오늘도 안 왔다. 아니, 어쩌면 벌써 와 있는데 내가 문을 안 열어 준 건지도 몰랐다. 나는 그 문 앞에서, 또 각주를 달았다. '이건 미결이 안 풀려서 그런 거다.' 그렇게 덮으면, 오늘도 잠은 올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각주가 예전만큼 안 먹혔다. 접수함에 들어간 그 서류 한 장이, 자꾸 머릿속에서 안 치워졌다. 나는 내일 아침이면 그걸 상급 부서로 올려야 한다. 내 손으로 접수하고, 내 손으로 처리하고, 내 손으로 그 애의 학적을 다른 도시로 넘기는 것. 학생회 일은 늘 빈틈없이 해 왔는데, 이 서류 하나만은 손이 안 갔다. 처리하면 끝나는 걸 아는데, 그 끝을 내가 만드는 게 싫었다. 나는 처음으로, 빈틈없이 일하는 게 싫은 학생회 부회장이 됐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뭔가를 인정한 셈이었다. 인정한다는 말만 안 했을 뿐.

영하 4도. 길은 여전히 얼어 있었고, 방학은 코앞이었다. 어떤 서류는 결국 왔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제 정말 떠난다. 나는 그 사람이 떠나는 걸 안 보고 싶은데, 왜 안 보고 싶은지는 끝까지 안 봤다. 온 것은 다 봤으면서, 안 온 것은 오늘도 안 봤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관찰을 제일 잘하면서 자기 마음만은 영영 관찰 못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시간은 이제 얼마 안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