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많이 온 날은, 모두가 조금씩 멍청해진다.
창밖이 하얗게 비면 다들 하던 걸 멈추고 창에 매달린다. 손바닥을 펴고, 사진을 찍고, 첫눈도 아닌데 첫눈처럼 군다. 나는 그게 늘 이상했다. 눈은 매년 오는데, 매년 처음 보는 것처럼 반응한다. 사람은 같은 입력에 매번 다른 값을 뱉는다고 했지. 눈 앞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는 창에 안 매달리는 쪽이다. 눈은 관찰하면 되지 매달릴 건 아니니까. 대신 나는 매달리는 애들을 관찰한다. 누가 제일 먼저 창으로 가는지, 누가 남의 반응을 보고 뒤늦게 따라 하는지, 누가 사진을 찍고도 결국 아무한테도 안 보내는지. 눈이 오면 교실은 평소보다 판이 잘 읽힌다. 다들 경계를 풀고 같은 방향을 보니까, 안 보던 각도가 잠깐 드러난다. 나한텐 그게 눈보다 볼 만하다.
나는 그 소란을 이용하기로 했다. 다들 창밖에 정신이 팔린 날은, 조용히 뭔가를 처리하기 좋은 날이다. 오늘 처리할 건 가방 속 캔이었다. 사흘이 나흘이 되도록 안 마시고 들고 다닌, 식어 빠진 캔. 그건 미결이고, 미결은 빈틈이고, 빈틈은 닫아야 한다. 눈으로 다들 멍청해진 틈에, 나는 그걸 도하한테 돌려주고 균형을 맞출 작정이었다. 감정어는 빼고, 회계 처리로.
영하 4도. 창에 성에가 끼었다. 나는 손끝으로 그걸 닦지 않았다. 닦아 봤자 다시 낀다. 어떤 건 닦는 것보다 그냥 두는 게 덜 번거롭다. 성에 너머로 운동장이 뭉개져 보였다. 선이 다 풀린 세상. 나는 그렇게 뭉개진 건 별로 안 좋아한다. 경계가 분명해야 어디까지가 무엇인지 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뭉개진 창을 한참 봤다.
도하는 눈 소식에 제일 먼저 멍청해진 쪽이었다.
"야, 눈 온다 눈!" 그 애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창가로 달려가 호들갑을 떨었다. 농구부 애들이 모여들었고, 교실 절반이 그 애를 중심으로 시끄러워졌다. 도하는 그런 애다. 어디에 있든 그 자리가 중심이 되는. 모두에게 똑같이 환하고, 그래서 정확히 누구의 것도 아닌.
나는 예전부터 그 균등함이 이상했다. 사람은 보통 편애를 한다. 더 웃어 주는 상대가 있고, 덜 웃어 주는 상대가 있다. 그런데 도하의 환함은 어디에나 똑같이 떨어졌다. 편차가 없는 빛. 그건 편하기도 하고 어딘가 서운하기도 한 종류였는데, 나는 그 서운함이 왜 내 칸에 적히는지 그때는 안 봤다.
나는 그 소란이 잦아들 타이밍을 쟀다. 너무 들떠 있을 때 말을 걸면 안 듣고, 다 식었을 때 걸면 어색하다. 적당히 가라앉는 그 중간 지점. 나는 가방에서 캔을 꺼내 손에 쥐고, 그 지점을 기다렸다. "이거 그날 거. 갚을게." 딱 그 한마디면 된다. 머릿속으로 몇 번 연습까지 했다.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었다. 캔 하나 돌려주는 데 대본이 필요한 사람은, 사실 캔이 문제가 아닌 거다. 그때 그 생각을 조금만 더 밀고 갔으면 됐는데, 나는 늘 딱 그 직전에서 멈춘다.
그런데 그 한마디를 꺼내기 직전에, 나는 다른 걸 봤다.
도하의 시선이, 한 곳에 멎었다.
떠들던 그 애가, 문득 창가 쪽을 봤다. 거기엔 서가을이 있었다. 다들 눈에 호들갑 떠는 와중에, 그 애만 혼자 조용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소란에 안 섞이고, 하얗게 비어 가는 창을 스케치북에 옮기면서. 눈 오는 풍경 속에서, 가을은 풍경의 일부처럼 고요했다.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같은 게, 그 애 주위에만 흐르는 것 같았다. 다른 애들은 눈을 보고 소리를 냈고, 가을은 눈을 보고 소리를 지웠다. 같은 창을 보는데 정반대로 반응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한 교실에 있었고, 도하는 시끄러운 쪽에서 조용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하의 눈이, 거기 한 박자 머물렀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 애는 곧 다시 친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떠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한 박자를 봤다. 나는 시선 읽는 데 도가 텄으니까. 가을이 전학생을 보던 그 옆눈을 읽었듯이, 도하가 가을을 본 그 반 박자도 읽었다. 누구한테나 똑같이 환하던 그 눈이,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조금 다르게 머물렀다는 걸. 환함의 농도가, 거기서만 미세하게 달랐다는 걸.
계산하는 사람만 아는 단위로. 나는 그 단위를 안다. 내가 도하한테서 처음 느낀 것도 그 단위였으니까.
가슴 어딘가에, 작은 가시 같은 게 박혔다.
이상했다. 도하가 누굴 보든 그건 그 애 자유다. 가을이 전학생을 봤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건 남의 일이었고, 남의 일은 관찰 대상일 뿐이니까. 그런데 도하가 가을을 본 건, 왜 관찰 대상으로 안 들어오지. 왜 보고만 있는데 어딘가 따끔하지. 추워서다. 아니다. 창가 자리라 외풍이 드는 거다. 아니다. 아침에 뭘 잘못 먹었다. 아니다. 어제 잠을 설쳤다. 아니다. 나는 아니다를 네 번쯤 반복하고 나서야, 이게 몸에서 온 게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몸은 이유가 있으면 아프고 이유가 없으면 안 아픈데, 이 따끔함은 이유 칸이 비어 있는데도 아팠다. 원인 없는 통증은 통증이 아니라 신호다. 나는 그 신호를 못 읽는 척했다.
나는 그 따끔함을 분류하려 했다. 빚 칸? 아니다. 변수 칸? 아니다. 결국 또 '미상' 칸이었다. 이름 없는 칸 옆에, 분류 안 되는 칸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두 칸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둘 다 도하와 관련돼 있고, 둘 다 내가 이름을 못 붙였다.
손에 쥔 캔이, 갑자기 더 무거워졌다. 나는 결국 그걸 못 돌려줬다. 타이밍을 놓쳐서, 라고 해 두자. 도하가 다시 떠들기 시작해서, 라고. 캔은 다시 가방으로 들어갔다. 미결은 닫히지 않았고, 오히려 옆에 비슷한 게 하나 더 생겼다.
그날 오후, 나는 머릿속에 도형을 그렸다.
나는 정리하지 못한 게 쌓이면,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본다. 글자로 안 풀리는 건 선으로 풀린다. 숫자는 크기만 말해 주지만 그림은 관계를 말해 준다. 누가 누구 옆에 있는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감정은 크기보다 방향이 문제라, 나는 감정일수록 그림으로 옮긴다. 옮겨 놓고 밖에서 보면, 안에 있을 땐 안 보이던 모양이 보인다. 대개는 그랬다. 오늘 본 시선들을 점으로 찍고, 선을 이었다.
가을은 전학생을 본다. 한 선. 전학생은, 아마 나를 본다. 정체는 못 잡았지만 위치가 그랬다. 또 한 선. 그리고 오늘, 도하는 가을을 봤다. 또 한 선. 세 개의 선을 이어 보니, 묘하게 한 방향으로 휘었다. 직선이 아니라 곡선. 점들이 둥글게 배치돼 있었다. 마치 원의 일부처럼.
나는 그게 우연인 줄 알았다. 점 세 개면 어차피 원 위에 놓을 수 있으니까. 세 점을 지나는 원은 언제나 딱 하나 존재한다. 배운 적 있다. 그러니 이 배치가 원으로 보이는 건 수학이지 운명이 아니라고, 나는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다독이는 사람은 대개 안 다독여도 되는 걸 다독이지 않는다.
원. 닫힌 도형. 그런데 원이 닫히려면 선이 하나 더 있어야 했다. 가을에서 시작해 전학생을 지나 나를 지나 도하를 지나, 다시 가을로 돌아오는 마지막 한 변. 도하에서 누군가로 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서 도하로 가는 선. 나는 그 선을 찾으려고 점들을 한참 들여다봤다. 도형을 머릿속에서 돌려도 봤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옆으로 뉘어 보고, 점 하나씩 지웠다 다시 찍어 봤다. 각도를 바꾸면 안 보이던 선이 보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안 보였다. 마지막 한 변만, 끝내 안 그려졌다.
나는 그게, 그 선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원이 안 닫히는 건, 누군가에서 도하로 가는 선이 아예 없기 때문이라고. 도하는 모두가 보지만, 도하를 그렇게 보는 사람은 이 도형 안에 없다고. 그래서 이 그림은 원이 아니라, 어딘가 끊긴 호(弧)라고.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깔끔하게, 단호하게.
틀린 결론이었다.
선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선을 그어야 할 점이 나라서 안 보였던 거다. 나는 도형 안의 모든 점을 밖에서 봤지만, 내가 서 있는 점만은 밖에서 못 본다. 눈이 얼굴 안쪽에 달려 있어서, 정작 자기 눈은 못 보는 것과 같다.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직접 못 보는 얼굴이 내 얼굴이다. 사람은 도형을 그릴 때, 자기가 서 있는 자리는 늘 시야 밖에 둔다. 가을이 자기 귀가 빨개진 걸 못 봤듯이. 나도, 내가 매일 옆자리를 너무 자세히 본다는 걸, 그 도형에 못 넣었다.
보는 사람은, 자기가 보이는 걸 가장 늦게 안다. 그리고 보는 사람은, 자기가 보고 있다는 것도 가장 늦게 안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 나는 한 번 더 그 시선을 찾으려 했다.
나를 보던 그 어두운 시선. 전학생으로 추정되는, 교실 뒤 구석의.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애는 눈 온 날을 핑계로 어디론가 자리를 비웠고, 동선이 겹칠 만한 곳에 아예 없었다. 빈자리는 묘한 거다. 사람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존재감이 더 있다. 나는 그 빈 의자를 한참 봤다. 거기 앉던 애의 시선이 늘 어느 각도로 나한테 닿았는지, 자리가 비고 나서야 또렷이 그려졌다. 있을 땐 안 보이고 없을 때 보이는 것. 오늘은 그런 게 자꾸 걸렸다. 찾을 시선조차 없는 날. 나는 네 번째로, 그 변수의 정체를 특정하는 데 실패했다.
모르는 게 줄지 않았다. 도하의 새 시선이 하나 늘었고, 내 가슴의 따끔함이 하나 늘었고, 전학생은 오늘 아예 사라졌다. 이 교실은 들어올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방인데, 그중 제일 모르는 건 자꾸 내 쪽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하교 무렵, 빈 교실에서 나는 오늘을 정리했다.
애들이 다 빠진 교실은 낮보다 각이 잘 선다. 소음이 없으니 낮에 놓친 게 되감기처럼 돌아온다. 나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하루 치 장부를 마감하는 시간이니까. 대개는 칸이 하나씩 채워지며 마감되는데, 오늘은 반대였다. 정리할수록 빈칸이 늘었다.
나는 오늘 교실의 거의 모든 각도를 쟀다. 누가 누구를 보는지, 어떤 시선이 어떤 단위로 다른지. 그런데 딱 하나, 내가 서 있는 자리의 각도만은 못 쟀다. 잴 생각도 안 했다. 거기엔 변수가 없다고 믿었으니까. 변수가 없는 자리는, 계산할 게 없다고.
가방을 메는데 캔이 둔탁하게 흔들렸다. 사흘째가 나흘째가 된, 식은 캔. 나는 오늘도 그걸 버리지 못했다. 버리면 미결이 닫히는데, 나는 그 미결이 닫히는 걸 어쩐지 원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답이었다. 미결을 못 견디는 내가, 이 미결만은 닫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게 그 따끔함의 정체였다. 답은 이미 손에 쥐어져 있었다. 사흘째 식어 가는 캔의 무게로, 아주 구체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물건은 마음의 각주 같은 거라, 본문은 못 읽어도 각주만 보면 대충 무슨 얘긴지 안다. 나는 그 각주를 읽을 줄 알면서 안 읽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답을, 또 안 봤다. 너무 빨리 가방을 닫았다.
영하 4도.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녹지 않은 것들 위에, 새 눈이 또 쌓였다. 닫히지 않은 원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이 한 줄 그어졌다. 그 선의 한쪽 끝이 나라는 걸, 나만 몰랐다. 그리고 그 모르는 각도가 곧 정면에서 나를 칠 거라는 것도, 그날의 나는 끝내 계산에 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