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못 견디는 답이 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오늘부로 알게 됐다.
'그냥'이다.
가방 안에 안 마신 캔이 셋이 됐다.
나는 받은 걸 못 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도하가 이름도 없이 툭툭 건넨 캔들이,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가방 안에 쌓였다. 하나일 때는 그러려니 했다. 둘일 때는 신경 쓰였다. 셋이 되자, 나는 더는 못 견뎠다. 이건 미결이고, 나는 미결을 못 견디는 사람이니까. 이름 없는 칸이 셋이나 열린 채로 방치돼 있는 걸, 나는 내 장부에서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장부를 닫기로 했다.
방식은 정해 뒀다. 캔을 돌려주고, 앞으로 이런 거 주지 말라고, 사무적으로 선을 긋는다. 감정어는 다 빼고. 이건 거래의 종결이지 사적인 접근이 아니다. 받은 물건을 못 버리는 나쁜 습관을 정리하는 절차다. 나는 그렇게 정리하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못을 박았다. 그러면 이 미결은 오늘 닫힌다. 나는 그렇게 계산했다.
점심시간, 나는 처음으로 그 애한테 먼저 다가갔다.
지난 몇 주 동안 늘 그 애가 나한테 왔다. 오늘은 내가 갔다. 그 방향의 낯섦이, 몇 걸음 안 되는 거리를 유난히 길게 만들었다. 나는 가방에서 캔 하나를 꺼내 들었다. 준비한 대사를 머릿속에서 한 번 더 정리했다. 이런 거 앞으로 주지 마. 부담돼. 딱 그 두 문장. 감정 없이, 짧게.
그 애 앞에 섰다. 도하가 나를 보고 특유의 얼굴로 웃었다. "어, 한이서. 왜?"
그리고 그 순간, 내 입에서 나온 건 준비한 대사가 아니었다.
"왜 자꾸 나한테 이런 거 줘."
준비한 건 '주지 마'였는데, 나온 건 '왜 줘'였다. 선을 그으려던 문장이, 이유를 캐는 문장으로 바뀌어 나왔다. 그 두 개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앞엣것은 장부를 닫는 말이고, 뒤엣것은 장부를 여는 말이다. 나는 닫으러 갔다가, 나도 모르게 열고 있었다.
말은 어떻게든 나왔다. 용기는 냈다. 그런데 나온 방식이 문제였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나는 늘 감정을 뺀 목소리를 내는 데 자신 있는 사람인데, 그 한 문장에서 음이 미세하게 떨렸다. 캔을 든 손끝도 같이 떨렸다. 나는 그걸 느꼈다. 얼음 장막 밖으로, 뭔가가 또 새어 나가는 걸 그 자리에서 느꼈다. 물으면서 흔들리는 사람은, 사실 답이 궁금한 게 아니다. 답이 두려운 거다. 나는 내가 이 답을 두려워한다는 걸, 흔들리는 손끝을 보고서야 알았다.
도하는, 조금 갸웃했다.
내가 왜 이러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갸웃함은 아주 잠깐이었고,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 애는 곧 특유의 무심한 웃음으로 돌아가, 뒷목을 긁으며 말했다.
"그냥 준 건데."
그냥.
"목말라 보여서. 별거 아니야."
나는 그 자리에서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냥'은, 나한테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답이었다.
나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다. 이 감정은 무엇이고, 저 행동은 무슨 뜻이고, 그 시선은 어떤 온도인지. 나는 세상을 다 분류해서 서랍에 넣어야 잠이 오는 사람이다. 그런데 도하는, 자기 친절에 아무 이름표도 안 붙였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건 이름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름표를 붙일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캔들을 '이름 없는 칸'이라고 불렀다. 그 칸을 닫으려면 이름을 붙여야 했다. 빚인지, 호의인지, 관심인지, 뭐라도. 그래야 장부에 적고 닫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도하는, 그 칸에 원래 이름이 없다고 확인해 줬다. 그건 빚도 아니고 관심도 아니고, 정말 그냥이라고. 계산도 의도도 없는, 그냥.
이름을 못 붙이는 칸은, 닫을 수가 없다. 나는 오늘 그 칸을 닫으러 왔다가, 그 칸이 영영 안 닫힌다는 걸 확인하고 돌아가게 됐다. 미결을 청산하러 갔다가, 그 미결이 청산 불가능하다는 판정만 받아 온 것이다.
사실 나는, 세상에 '그냥'이란 게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어릴 때 배웠다. 아버지의 사업이 한 번 크게 기울었을 때, 나는 봤다. 그렇게 자주 웃으며 우리 집을 드나들던 친척들이, 하루아침에 발길을 끊는 걸. 명절마다 나를 예뻐한다던 사람들이, 돈 냄새가 사라지자 이유를 대며 하나둘 등을 돌리는 걸. 그때 나는 알았다. 사람의 친절에는 다 이유가 있다. 웃음에도, 호의에도, 다정함에도, 뒤에는 계산이 있다. 계산이 맞을 때만 사람은 곁에 있고, 계산이 어긋나면 '그냥' 떠난다. 그러니까 세상에 진짜 '그냥'은 없다. '그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이유를 안 대는 것뿐이다.
나는 그렇게 믿으며 얼음 장막을 쳤다. 남의 친절을 받으면, 나는 늘 그 뒤의 계산을 먼저 읽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잘해 주지. 뭘 원하지. 나중에 뭘 받아 내려고 지금 이걸 주지. 그 계산을 다 읽고 나면, 나는 그 친절을 안전하게 서랍에 넣을 수 있었다. 이름표를 붙일 수 있었으니까. '무슨무슨 목적의 호의.' 그렇게 적어 두면, 나중에 그 사람이 등을 돌려도 나는 안 다쳤다. 이미 계산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도하는, 그 계산이 안 읽혔다.
나는 몇 주 동안 그 애의 캔 뒤에 있는 계산을 읽으려 했다. 나한테 잘 보이려는 걸까, 학생회 편의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걸까. 그런데 아무리 관찰해도, 그 애한테서는 계산이 안 나왔다. 그리고 오늘, 그 애 입으로 확인했다. 계산이 없다고. 진짜로 '그냥'이라고. 세상에 없다고 믿었던 그 '그냥'을, 그 애는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계산이 있는 친절은 서랍에 넣을 수 있는데, 계산이 없는 친절은 넣을 데가 없었다. 내 서랍에는 '그냥'이라는 칸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그냥'에 조금 서운했다.
서운. 나는 그 감정 앞에서도 멈췄다. 미결이 안 닫혀서 답답한 거라면 이해가 되는데, 서운한 건 결이 달랐다. 나는 왜 서운했을까. 그 애한테 나는 '그냥'인 사람이라서? 목말라 보이는 아무나한테 캔을 건네듯, 나도 그 아무나 중 하나라서? 도하는 가을 앞에서는 목이 막혀 한마디도 못 하면서, 나한테는 이렇게 '그냥' 캔을 건넨다. 그 차이가 뭘 뜻하는지, 나는 오늘 그 애 입으로 확인했다. 나는 그 애한테, 목이 막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확인이, 이상하게 아팠다.
그런데 나는 그 아픔을 곧바로 뒤집어서 방패로 썼다. 거봐. 나는 특별하지 않아. 저 애한테 나는 그냥이야. 그러니까 내가 저 애를 볼 때 드는 이 가시도, 사실은 별거 아니야. 짝사랑도 뭣도 아니고, 그냥 오래 신경 쓰인 미결일 뿐이야. 저 애가 나한테 '그냥'이듯, 나도 저 애한테 '그냥' 그런 거야. 도하의 무심한 한마디가, 내 부정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줬다. 나는 그 알리바이를 냉큼 집어 들었다.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생겼으니까.
가슴의 가시는, 그 알리바이 아래에서도 여전히 욱신했다. 나는 그것도 못 들은 척했다.
돌아서면서, 나는 하나를 더 알았다.
도하는 내가 방금 흔들린 걸 몰랐다. 내 목소리가 떨린 것도, 손끝이 흔들린 것도, 그 애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 애한테 나는 '그냥'이라, 그렇게 세밀히 볼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또, 아무한테도 안 들킨 채 혼자 흔들렸다. 관찰자는 자기 흔들림을 자기만 안다. 남들은 내가 얼음인 줄 알고, 나만 내가 방금 녹은 걸 안다.
들켰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들켰으면, 나는 그걸 근거로 뭐라도 했을 텐데. 안 들키니까, 나는 이 흔들림을 어디에도 못 쓰고 혼자 삼켜야 했다. 그리고 삼킨 그 흔들림에도, 나는 결국 이름표를 붙였다. '컨디션.' 오늘 좀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렇게 붙이면 그것도 서랍에 들어갔다.
웃긴 일이었다. 나는 도하의 '그냥'을 그렇게 못 견뎌 하면서, 내 흔들림에는 아무렇지 않게 '그냥 컨디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남의 그냥은 못 견디면서, 내 그냥은 편하게 썼다. 남이 이름 안 붙이는 건 답답해하면서, 나는 내 마음에 가짜 이름표를 붙여 서랍에 넣었다. 어쩌면 나도 도하랑 똑같은 사람이었다. 진짜 이유는 안 대고, '그냥'으로 덮는 사람.
다른 게 있다면, 도하의 '그냥'은 진짜 아무 이유가 없어서 가벼웠고, 내 '그냥'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무거웠다는 것뿐이다. 아무 이유 없는 사람은 그 말을 하고 웃으며 지나갔고, 이유를 숨기는 나는 그 말을 하고 하루 종일 무거웠다. 같은 단어인데, 하나는 비어서 가볍고 하나는 차서 무거웠다. 나는 그 무거운 '그냥'을 가방처럼 메고, 안 마신 캔 셋과 함께 집으로 갔다.
미술실 쪽을 지날 때, 오늘도 그 그림을 봤다.
가을은 완성한 설경을 옆에 두고, 스케치북을 넘기고 있었다. 다음에 그릴 걸 찾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장에서, 그 애 손이 잠깐 멈칫했다. 무슨 장에서 멈췄는지 나는 못 봤다. 멀었으니까. 다만 그 애가, 자기가 그린 뭔가를 보고 스스로 놀란 것처럼 잠깐 멈춘 건 봤다. 저 애도 자기 안에 자기가 모르는 칸이 있는 걸까. 나는 잠깐 그렇게 생각하다, 곧 지웠다. 남의 서랍을 넘겨짚는 건 근거 없는 추측이니까.
그리고 그 근처 어딘가, 도하가 오늘도 가을 쪽으로 눈이 새는 걸 봤다. 다가가지는 못하고. 저 애는 가을 앞에서만 저렇게 목이 막힌다. 나는 그걸 보며 가시가 또 욱신했지만, 오늘은 그 가시에 이유를 안 달았다. 이미 오늘 하루, '그냥'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고, 너무 많이 썼다.
집으로 가는 길, 가방 안에서 캔 셋이 서로 부딪혔다.
나는 오늘 그 미결을 닫으러 갔다가, 못 닫고 돌아왔다. 아니, 닫기는커녕 하나를 더 늘렸다. '나는 왜 그 그냥에 흔들렸나.' 미결을 청산하러 갔다가, 미결을 하나 더 안고 왔다. 나는 요즘, 늘 이런 식이다. 정리하러 갈수록 빈칸이 는다.
영하 4도. 길은 여전히 얼어 있었다. 어떤 친절에는 이름이 없고, 어떤 흔들림에는 가짜 이름이 붙는다. 도하의 '그냥'은 진짜였고, 내 '그냥 컨디션'은 가짜였다. 진짜 그냥인 사람은 편하게 사는데, 가짜 그냥을 쓰는 나는 왜 이렇게 무거울까. 나는 그 무게의 이름을, 오늘도 안 붙였다. 붙이면, 그건 '그냥'이 아니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냥'이 아니게 되는 순간, 나는 그걸 인정해야 할 테니까. 나는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됐다. 그날의 나는, 그 준비가 언제쯤 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