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ael Studio
작품 소개로1화 · 소설

개학, 그리고 계산되지 않는 것

개학 날, 반이 새로 짜인 교실에서 이서가 새 짝꿍 윤도하와 처음 마주친다. 큰 소동 없이, 사소한 친절 하나가 이름도 없는 칸에 조용히 적힌다.

사람들은 나를 얼음공주라고 부른다.

처음엔 비웃음이었고, 지금은 그냥 호칭이다.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다. 얼음은 단단하니까. 누가 두드려도 표정을 안 바꾸고, 깨지더라도 깨지는 소리를 안 내니까. 별명이란 건 남들이 나를 어디까지 들여다봤는지 보여주는 눈금이다. 얼음공주, 거기까지. 딱 표면까지만. 나는 그 눈금이 마음에 들었다. 그 안쪽은 아무도 못 봤다는 뜻이니까.

나는 거의 모든 걸 계산한다. 내신 평균이 0.1점 떨어지면 어느 과목을 몇 점 올려야 복구되는지, 학생회 예산이 분기마다 얼마씩 남는지, 다음 시험까지 며칠이고 그 며칠을 어떻게 쪼개야 하는지.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 몇 분 안에 학교에 닿는지까지, 나는 다 안다. 어긋나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다. 어긋났을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남에게 보이는 게 싫어서다.

숫자는 정직하다. 노력한 만큼 정확히 답을 준다. 100을 넣으면 100을 돌려주고, 80밖에 안 넣으면 80만 돌려준다. 거기엔 기분도 변덕도 없다. 어제 친했다고 오늘 더 주지 않고, 미워한다고 덜 주지도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는 게 그거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같은 입력에 매번 다른 값을 뱉는다. 웃으면서 등을 돌리고, 다정한 얼굴로 가장 아픈 데를 찌른다.

그래서 나는 계산이 안 되는 쪽으로는 아예 문을 닫았다. 사람의 마음. 그 칸은 비워 둔 채로 잠가 버렸다. 닫힌 방은 춥지도 외롭지도 않다. 그냥 비어 있을 뿐이다. 비어 있는 건 안전하다. 들어올 게 없으면 부서질 것도 없으니까. 그게 부회장 한이서가 입학 뒤로 한 번도 약점을 잡히지 않은 방법이다. 누구와도 적당히 친하고, 누구에게도 진짜로 가깝지 않은 것.

그 방법에 빈틈이 없었다. 개학날, 그 교실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그랬다.


올해 개학날은 영하 4도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처음 등교한 아침, 하늘은 눈을 머금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손잡이도 차고, 숨도 하얗게 얼었다. 나는 평소보다 십 분 일찍 나왔다. 개학날은 변수가 많은 날이다. 변수가 많은 날일수록 일찍 도착해서, 남들이 허둥대는 동안 먼저 자리를 잡아야 한다.

중앙현관 게시판엔 새 반 편성표가 붙어 있었다. 그 앞에 아이들이 몰려, 패딩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자기 이름을 찾느라 까치발을 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친구 이름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고, 누군가는 조용히 어깨를 늘어뜨렸다. 한 학기가 통째로 새로 짜이는 날. 그 종이 한 장이 앞으로 백 일을 결정한다는 걸 다들 알아서, 현관은 아침부터 술렁였다.

나는 몰리지 않았다. 줄이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사람이 흩어진 뒤 맨 마지막에 한 번에 확인했다. 2반. 손가락으로 명단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다른 걸 계산하고 있었다. 학생회 부회장은 개학 첫 주에 할 일이 많다. 새 학기 예산안, 동아리 등록 일정, 신입 임원 인수인계. 반이 바뀌었다는 건 나한테 새 친구가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새 동선과 새 일정표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운동장이 천천히 하얘졌다. 누군가는 손바닥을 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첫눈이라고 멈춰 서는 건, 녹을 걸 알면서 손에 받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나는 외투 깃을 여미고 교실 쪽으로 걸었다. 새 교실, 새 자리, 새 짝꿍. 익숙한 게 한꺼번에 다 갈렸지만, 갈리는 건 싫지 않았다. 변수는 정리하면 그만이니까.


2반 교실은 3층 끝, 창가 줄이 좋았다.

나는 일찍 들어가 창가 자리를 잡았다. 창가는 한쪽이 막혀 있어 변수가 절반으로 준다. 등 뒤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누가 다가오는지도 시야에 다 들어온다. 나는 가방에서 새 공책과 필통을 꺼내 책상 위에 직각으로 맞춰 놓았다. 그러고는 늘 하던 대로, 교실 안을 한 바퀴 훑었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변수를 본다. 저 뒤에서 벌써 무리를 만든 애들, 혼자 이어폰을 꽂은 애, 칠판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애. 나는 그들을 친구나 적이 아니라, 앞으로 백 일 동안 같은 공간을 쓸 조건으로 분류한다. 누가 시끄럽고 누가 조용한지, 누가 청소를 빼먹을지, 누가 나한테 학생회 일로 아쉬운 소리를 하러 올지. 그렇게 정리해 두면 교실은 예측 가능한 방이 된다. 예측 가능한 방은 안전하다.

창밖으로 눈이 두꺼워졌다. 운동장이 완전히 하얘지는 걸 보면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올해도 무사히. 적당히 친하고, 적당히 멀게. 한 학기를 또 그렇게 빈틈없이 지나가면 된다고. 그 계획이 흐트러지는 데에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보류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정할 수 없는 변수가 딱 하나 있었다. 옆자리. 짝꿍은 한 학기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 두는 사람인데, 그게 누가 될지는 명단에도 없었다. 나는 그 칸을 보류함에 넣어 두었다. 누가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짝꿍이란 건 한 학기 동안 옆에 두는 가구 같은 거니까. 책상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뿐이라고.

교실 뒷문이 열리고, 키 큰 남자애 하나가 들어왔다.

들어오는 순간 교실의 공기가 그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무리를 짓고 있던 애들이 고개를 돌렸고, 누군가는 이름을 부르며 손을 들었다. 이마가 드러나는 짧은 머리, 누구와도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 윤도하. 우리 학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애. 운동도 잘하고, 성적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누구한테나 똑같이 환한 애. 모두가 좋아하고, 그래서 정확히 누구의 것도 아닌 애.

그 애가 손에 든 자리표를 한 번 보더니, 곧장 내 옆 빈자리로 왔다. 의자를 빼면서,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어, 부회장이랑 짝이네. 잘 부탁해."

이름이 아니라 직책을 불렀고, 그게 차라리 나았다. 한이서가 아니라 부회장이라면, 그건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내 역할을 부른 거니까. 역할은 거리감이 있어서 다루기 쉽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유명한 애라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나한테 윤도하는 옆자리에 앉은 변수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책상 한 칸, 팔 하나. 적당한 거리다. 나는 그렇게 적어 두고 다시 내 일로 돌아갔다.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 표는 흐트러지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


겨울 교실은 손이 먼저 언다.

히터가 아직 데워지지 않은 1교시 전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펜을 꺼내다 놓쳤고, 펜은 책상 다리를 타고 바닥으로 굴러 그 애 발치까지 갔다. 데구르르. 빈틈없는 게 몸에 밴 사람은, 무언가 굴러가면 머리보다 손이 먼저 부끄럽다. 나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몸을 숙이려 했다.

내가 숙이기 전에, 도하가 펜을 주워 내밀었다. 별생각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러면서 한 번, 내 손끝을 봤다. 추위에 빨갛게 언 손끝을.

"손 빨개. 이 교실 춥지. 자리 바꾸자, 내가 창가 할게. 부회장은 히터 쪽."

추워서다. 그뿐이다. 손끝이 빨간 건 영하 4도니까 당연한 거고, 그 애가 그걸 본 것도 그냥 눈에 들어와서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애는 묻지도 않고, 자기가 좋다고 앉은 창가 자리를 내게 밀었다.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데에 일 초도 망설이지 않는 얼굴로. 펜을 건네고 손을 거두는 그 반 박자가, 평소보다 미세하게 길었다. 계산하는 사람만 아는 단위로.

나는 빨개진 손끝을 슬그머니 책상 밑으로 내렸다. 그게 다였다. 별일도 아니었으니까.

도하는 벌써 뒤를 돌아, 자리에 앉기도 전에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자기가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는 얼굴로.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 애한테는 펜 한 자루 주워 준 것뿐일 테니까. 손끝이 빨갛다고 말해 준 것도, 좋은 자리를 양보한 것도, 그 애한테는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친절이 습관인 사람은, 자기가 친절했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별일이 아닌데, 이상하게 정리가 안 됐다.

나는 그 친절을 어느 칸에 넣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 변수 칸은 아니었다. 변수는 대비하면 되는 건데, 이건 대비할 게 없었다. 빚 칸도 아니었다. 빚이라면 갚으면 끝나는데, 그 애는 갚을 걸 바라고 한 게 아니었으니까. 갚을 필요가 없는 친절은, 오히려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걸, 이름도 없는 칸에 적어 두었다. 내 머릿속 표에 처음 생기는, 분류가 안 되는 칸. 비어 있던 칸이라 그런가, 한 줄 적었을 뿐인데 칸이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1교시 종이 울리고, 나는 시선을 칠판으로 돌렸다. 새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그걸 한 자 한 자 공책에 옮겨 적었다. 똑바로, 빈틈없이. 칸과 칸 사이를 자로 잰 듯 맞추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손끝으로 땋은 머리를 한 번 쓸어내렸다. 한 올도 빠져나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됐다. 머리카락은 적어도, 내가 단속하는 만큼 단정했다. 사람 마음과 달리.

윤도하는 수업 중에도 가끔 옆에서 작게 웃었다. 선생님 농담에, 친구 쪽지에, 창밖 눈에. 저 웃음은 거기 있는 모두의 것이고, 그래서 정확히 아무의 것도 아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정리했다. 정리는 했는데, 이름 없는 그 칸만 자꾸 눈에 걸렸다. 지운다고 지워지는 칸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에, 그 애는 한 번 더 그랬다.

복도 자판기 앞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동전을 찾느라 주머니를 뒤지는 사이, 도하가 먼저 자기 카드로 따뜻한 캔 하나를 뽑아 내 쪽으로 밀었다. "어차피 두 개 살 거였어." 거짓말인 게 빤히 보이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대답도 안 기다리고 친구들 쪽으로 가 버렸다. 나는 손에 남은 따뜻한 캔을 한참 들고 서 있었다. 캔은 따뜻한데, 그게 어디서 온 온기인지 분간이 안 됐다.

분간이 안 되는 건 위험하다. 위험한 건 약점이 되고, 약점은 들키면 무너진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나는 캔을 마시지 않고 가방에 넣었다. 마시면, 그 온기를 인정하는 것 같아서.

이름 없는 칸에 두 번째 줄이 생겼다. 같은 칸에. 나는 그게 무슨 칸인지 여전히 몰랐다. 모른다는 게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나는 모르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날 종일, 나는 한 가지를 더 알아챘다.

교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도하 쪽이 아니었다. 조금 더 뒤, 조금 더 옆. 고개를 들면 사라질 시선이라, 나는 굳이 들지 않았다. 첫날부터 변수를 두 개나 늘릴 필요는 없으니까. 새 반에 전학생이 하나 있다고, 조회 때 담임이 말한 것 같기도 했다. 이름은 흘려들었다. 그 시선은 도하의 것처럼 환하지 않았다. 더 조용하고, 더 오래 머물렀다. 마치 나처럼, 벽을 친 사람의 시선 같았다.

하지만 그건 내일의 변수다. 오늘은 이미 칸이 하나 늘었으니까.

하교 무렵, 눈은 그쳤고 운동장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도하가 가방을 메며 지나가다, 별 뜻 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부회장, 내일 봐. 펜 또 떨어뜨리지 말고." 그러고는 웃으며 친구들과 사라졌다. 자기가 오늘 무슨 칸을 채웠는지도 모른 채.

나는 텅 빈 교실에 잠깐 남아, 가방 속 식은 캔을 만졌다. 개학은 모든 걸 새로 짠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끝내 계산에 넣지 못했다. 친절이라는 건, 첫눈처럼 소리도 없이 쌓인다는 것. 그리고 소리 없이 쌓인 건, 녹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무게가 느껴진다는 것. 그게 무엇이 될지, 그날의 나는 아직 몰랐다.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