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ael Studio
작품 소개로3화 · 소설

보는 사람, 보이는 사람

개학 한 주쯤. 이서가 자기를 보는 시선의 출처를 적극 추적하지만 또 놓치고, 대신 같은 반 서가을의 시선이 전학생에게 가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 와중에 이서 자신의 눈이 자꾸 도하에게로 향한다. 본인은 그걸 추적 후유증으로 치부한다.

모르는 게 둘이 된 지 사흘째였다.

하나는 옆자리에서 웃고, 하나는 등 뒤에서 본다. 도하의 친절은 여전히 빚으로 청산되지 않았고, 그 시선은 여전히 정체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미결을 오래 못 견디는 사람이다. 미결은 책상 위에 쌓인 채점 안 한 답안지 같아서, 그게 거기 있는 한 나는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거슬리는 건 사실 그 시선이 아니었다. 누가 나를 보든, 보는 건 그 사람 자유다. 나를 거슬리게 한 건, 그걸 못 잡아낸 내 빈틈이었다. 나는 거의 모든 걸 계산하는 사람인데, 사흘이 지나도록 변수 하나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내 실력의 문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칸을 채워 닫기로 했다. 정확히 누가, 왜 보는지까지.

영하 4도. 창밖은 어제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있었다. 녹지 않은 눈은 더 미끄럽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미끄러운 길을 골라 걷고 있었다.


도하는 아침부터 평소 같았다.

"야, 1교시 뭐냐." 어제 그 어색함은 그 애한테 흔적도 안 남은 것 같았다. 밝은 사람은 회복이 빠르다. 아니, 애초에 상처로 안 받으니까 회복할 것도 없는 거겠지. 그 애는 내 굳었던 얼굴을 기억하면서도, 그걸 캐묻는 대신 그냥 가벼운 농담으로 덮었다. 분위기를 푸는 건 그 애 특기였다.

나는 그 농담을 평소처럼 단답으로 받았다. 하지만 오늘은 도하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온통 교실 뒤편, 그 시선의 출처에 가 있었다. 도하는 변수지만 이미 아는 변수다. 모르는 변수가 더 급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애가 "1교시 한국사" 하고 알려 주는 걸 들었고, 펜을 챙기는 걸 봤고, 웃을 때 보조개가 어디 패는지까지 곁눈으로 담았다. 급한 일에 집중하려는 사람치고는, 옆자리를 너무 자세히 보고 있었다. 나는 그걸 그때 알아채지 못했다.


쉬는 시간, 나는 움직였다.

학생회 전달 사항이 있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뒤편을 한 바퀴 돌았다. 자연스럽게. 게시판을 확인하는 척, 사물함을 여는 척, 동선을 짜서. 그러면서 시선의 각도를 쟀다. 어제 좁혀 둔 출처는 교실 뒤 창가 반대쪽 구석이었다. 그 각도에서 내 자리가 보이려면, 사람이 어디 앉아 어떻게 고개를 둬야 하는지 나는 이미 계산해 뒀다. 이제 거기 누가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그 구석에 가까워질수록, 시선은 마치 내가 다가오는 걸 아는 것처럼 미리 거둬졌다. 내가 고개를 드는 타이밍과 그쪽이 시선을 거두는 타이밍이, 동전 양면처럼 정확히 어긋났다. 한 번, 두 번. 거기엔 책상에 엎드린 누군가의 굽은 등이나, 창밖을 보는 옆얼굴이나, 그런 무심한 풍경만 남았다. 마치 보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위치를 고르는 데 익숙한 사람 같았다.

오늘도 직접은 못 잡았다. 변수의 자리는 아는데, 얼굴은 못 본다. 나는 잠깐, 내가 추격에 서툰 게 아니라 상대가 도망에 능한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더 불편한 결론이었다. 도망에 능하다는 건, 도망쳐 본 적이 많다는 뜻이니까.


대신, 나는 다른 걸 봤다.

교실 뒤를 도는 동안, 한 여자애가 눈에 들어왔다. 같은 반인데 이름도 잘 모르는 애. 늘 창가 쪽에 조용히 앉아 스케치북에 뭔가를 그리는, 무리에 안 섞이는 애. 서가을. 나는 그 애를 풍경처럼 알고 있었지, 변수로 분류해 둔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애의 시선이, 자꾸 한 곳으로 갔다.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다. 그림 그리는 애가 뭘 보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같은 방향으로 세 번 넘게 가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대상이다. 가을은 고개를 안 돌린 척, 옆눈으로 어떤 옆모습을 좇고 있었다. 좇다가, 스케치북 뒷장에 선을 몇 개 긋고, 다시 좇았다. 그 애가 보는 방향을 따라가 보니, 거기 그 전학생이 있었다. 교실 뒤 구석의, 내가 끝내 얼굴을 못 잡은 그 자리 근처.

나는 그 시선을 안다. 누군가를 몰래 보는 사람의 시선. 들킬까 봐 짧게 거두고, 그래도 못 참고 다시 가는. 나는 그런 시선을 한 번도 보낸 적이 없어서, 보내는 사람은 한눈에 알아본다. 안 해 본 일일수록 남이 하는 게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그러다, 짧은 순간이 있었다.

가을이 옆모습을 좇던 그 찰나, 전학생이 고개를 들었고,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가을의 연필이 툭 멎었고, 전학생은 곧장 시선을 거뒀다. 가을은 들킨 사람처럼 스케치북으로 고개를 숙였고, 그 애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 영하 4도라서가 아니라.

나는 그 장면을, 교실 한가운데 서서 통째로 봤다.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과, 그 둘 사이에 흐른 반 박자를. 묘했다. 나는 나를 보는 시선을 찾으러 왔는데, 정작 잡은 건 남이 남을 보는 시선이었다. 내가 등 뒤에서 누군가에게 보이는 동안,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교실은 생각보다 복잡한 도형이었다. 일직선이 아니라, 어딘가 둥글게 휘어 있는.

그리고 그 도형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각도가 하나 더 있다는 걸 그때의 나는 몰랐다.


자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무심코 옆을 봤다.

도하였다. 그 애는 친구랑 떠들면서 웃고 있었다. 별일도 아니었다. 그냥 옆자리니까 눈에 들어온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방금 가을이 전학생을 보던 그 옆눈을 떠올리다가, 내 눈이 어느새 도하 쪽에 가 있는 걸 알아챘다. 고개는 안 돌렸는데, 시선만.

심장이 한 박자 어긋났다. 추워서다. 아니, 아까부터 교실 뒤를 돌아다녀서 숨이 찬 거다. 추적하느라 신경이 곤두서서 시야가 예민해진 거고, 예민해진 시야가 가장 가까운 변수를 자꾸 잡는 거다. 그뿐이다. 나는 그렇게 정리했다. 빠르게, 단호하게, 평소보다 한 박자 빠르게.

너무 빨리 정리한다는 게, 정리할 게 있다는 뜻이라는 걸, 나는 못 봤다. 가을이 자기 시선을 못 숨겼듯, 나도 내 시선을 못 봤다. 사람은 남의 시선은 잘 보면서, 자기 시선은 못 본다. 보는 사람은 늘 자기가 보인다는 걸 가장 늦게 안다.


그날, 나는 변수 하나를 추가했다.

가을. 같은 반, 조용한 애, 전학생을 보는 시선. 나는 그 애를 '관찰 대상' 칸에 넣었다. 내 일은 아니지만, 일단 보이면 적어 두는 게 내 버릇이다. 그 애가 보는 전학생이, 어쩌면 나를 보는 그 시선의 출처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추론도 한 줄 적었다. 위치가 겹쳤으니까. 하지만 확인은 또 못 했다. 추론은 추론일 뿐, 얼굴을 못 본 이상 0으로 확정할 수 없다.

모르는 게 줄지 않았다. 시선의 출처는 오늘도 못 잡았고, 가을이라는 변수가 하나 더 늘었으니, 오히려 늘었다. 나는 모르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이 교실은 들어올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방이었다.


하교 무렵, 빈 교실에서 나는 오늘을 정리했다.

자기를 보는 시선을 쫓는 사람이, 정작 자기가 누굴 보는지는 모른다. 오늘 나는 그 문장을 가을에게서 봤다. 그 애는 전학생을 그렇게 좇으면서도, 자기 귀가 빨개진 건 몰랐다. 나는 그게 안쓰러우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익숙한 게 왜 익숙한지는, 굳이 따지지 않았다.

가방을 메는데 안에서 캔이 둔탁하게 흔들렸다. 사흘째 안 마신, 식은 캔. 나는 오늘도 그걸 버리지 않았다. 버려야 할 이유를 못 찾아서가 아니라,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를 못 찾아서. 그 둘은 다른 건데, 나는 그 차이를 일부러 안 봤다.

영하 4도에서는 한 번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 시선도, 친절도, 안 마신 캔도, 못 본 척한 내 눈도. 녹지 않은 것들은 그렇게 한 겹씩 쌓여, 언젠가 무게를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이 겨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들은 녹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