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엘의 기록
아침이 되면 무서운 일도 조금은 작아질 줄 알았어요.
밤에는 소리가 너무 커요.
나무가 삐걱이는 소리도, 누군가가 잠결에 앓는 소리도, 멀리서 바람이 여관 벽을 건드리는 소리도, 전부 무언가가 다시 찾아오는 발소리처럼 들려요.
그래도 아침이 오면 빛님이 세상을 얇게 덮어 주시니까, 어제보다 오늘은 조금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침은 무서운 일을 없애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 똑바로 보게 해 주는 시간일 때도 있나 봐요.
반델프 아저씨는 델피 씨를 찾아 달라고 했어요.
그는 화난 사람처럼 말했지만, 저는 그 말 안에 겁먹은 아버지가 있다는 걸 조금 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떠나기 전에 말했어요.
"반델프 아저씨, 델피 씨를 찾으러 가기 전에요. 돌아오면 혼낼 말 말고, 제일 먼저 할 말을 하나만 정해요."
아저씨는 얼굴을 찡그리고, 씩씩거리고, 모두가 들리도록 문 쪽으로 목소리를 던졌어요.
"몸 성히 안 오기만 하라 해!"
그 말은 이상한 말이었어요.
오지 말라는 말처럼 들리는데, 사실은 꼭 오라는 말이었어요.
몸 성히.
그 말이 제가 해야 할 임무가 되었어요.
저는 에일린 언니와 칼트에게 작게 말했어요.
"몸 성히 데려오는 게 우리 임무가 되었네요?"
그때만 해도, 그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아직 다 몰랐어요.
할머니의 이야기
칼트는 독 포도주를 챙겼어요.
반델프 아저씨가 내준 위험한 물건이었어요.
칼트는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챙기겠다고 했고, 저는 그가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인지 물었어요.
칼트는 어른이라고 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뒤집혔어요.
에일린 언니는 음주는 금지사항이라고 했어요.
그런 말들이 오가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났어요.
피난민 중 리더처럼 보이던 노파 한 분이었어요.
저는 얼른 문 쪽으로 가서 손을 잡고 앉을 자리로 모셨어요.
"무슨 일이신가요? 앗! 아침 식사를 아직 안 챙겼죠? 금방 만들어드릴게요."
노파는 멋쩍게 웃었어요.
여명의 빛을 지는 사람이 이럴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저는 그런 말이 조금 이상해요.
빛을 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손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파는 반델프 아저씨 목소리가 너무 커서 듣게 되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델피라면 사정이 있어서 떠났을 거라고 했어요.
사정.
그 말은 아주 작은 상자처럼 들렸어요.
열기 전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상자.
노파는 목소리를 낮추고, 누가 들을까 봐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애를 배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어요.
저는 먼저 델피 씨가 직접 말한 것인지, 아니면 몸 상태를 보고 짐작한 것인지 물었어요.
노파는 산파 일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했어요.
델피 씨는 근처 약초쟁이와 몰래 만나고 있었다고 했어요.
아버지 몰래.
그리고 일주일쯤 전에 노파에게 와서, 뱃속 아이가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고 해요.
이제 아버지에게 더 숨길 수 없을 것 같다고요.
저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작은 생명을 떠올렸어요.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겨져야 했던 아이.
아직 울지도 않았는데, 벌써 누군가의 분노와 부끄러움과 두려움 사이에 놓인 아이.
저는 작게 기도했어요.
"새벽의 빛님, 길 위에 선 사람을 꾸짖기 전에 먼저 비춰 주세요. 숨겨야 했던 마음에는 문을, 두려워 떠난 발에는 돌아올 길을."
그리고 덧붙였어요.
"아직 이름도 모르는 작은 생명에게는 따뜻한 아침을 주세요."
노파는 차운티의 성호를 그었어요.
다산과 평온, 행복을 바라는 성호였어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아주 오래된 밭고랑처럼 보였어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무언가가 자라기를 바라나 봐요.
노파는 약초쟁이가 몇 달 전 훌쩍 떠났다고 했어요.
반반하고 말솜씨가 좋은 한량 같은 사람이었다고도 했어요.
델피 씨는 검은 머리에 기가 드센 여자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생각했어요.
기가 드센 사람도 무서워요.
괄괄한 사람도 혼자 있으면 떨 수 있어요.
말을 세게 하는 사람도, 돌아갈 문이 닫혀 있다고 느끼면 길을 잘못 들 수 있어요.
저는 말했어요.
"저는 델피 씨가 그르쳐졌다고는 말하지 않을래요. 누군가에게 속았을 수도 있고, 외로웠을 수도 있고, 그냥 사랑받고 싶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저도 같았어요.
칼트가 나간 이유
노파가 이야기하는 동안 칼트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어요.
평소라면 뭐라도 한마디 했을 텐데, 그는 창밖만 보고 있었어요.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깨가 굳어 있었어요.
그러다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말했어요.
"말. 을 돌보러.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는 거의 뛰쳐나가듯 밖으로 나갔어요.
문이 닫히는 소리가 컸어요.
노파는 자신이 무슨 실례를 했는지 걱정했어요.
저는 괜찮다고 말했어요.
사실 괜찮은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지금 노파가 죄책감을 짊어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칼트에게 무엇이 있었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칼트가 무엇에 찔렸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어요.
델피 씨가 사라졌다는 말만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어요.
아이를 밴 여자.
그 여자가 혼자 있고,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 부분에서 칼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요.
눈을 피하고, 숨을 고르고, 말을 고르지 못하다가 밖으로 나갔어요.
저는 칼트의 과거를 몰라요.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제가 보고서처럼 써도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어떤 말은 사람 안쪽에 있는 오래된 상처를 건드려요.
상처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냥 평범한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상처를 가진 사람은 갑자기 숨이 막힐 수 있어요.
나중에 마일이 칼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을 때, 저는 말했어요.
"마일. 그런 건 묻지 않는 게 더 좋아요. 스스로 말해주기 전에는요."
마일은 놀란 얼굴로 네, 하고 대답했어요.
잘 몰라도 괜찮아요.
모르는 채로 조심하는 것도 배워야 하는 일이니까요.
남는 사람들
저는 마일과 마브리를 데려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델피 씨가 정말 겁먹고 있다면, 갑옷 입은 어른 셋이 다가가는 것보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필요할지도 몰랐으니까요.
특히 마브리는 사람들을 살피는 일을 잘했고, 마일은 겁이 나도 돌아와서 저를 지켜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칼트는 여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 말도 맞았어요.
여관은 피난민들이 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었고, 반델프 아저씨와 일꾼들이 무기를 들었다고 해서 진짜로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칼트는 이곳을 앞으로 구출할 사람들을 위한 거점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에일린 언니는 결정을 내렸어요.
이번 수색은 에일린 언니, 칼트, 그리고 저.
세 명으로 제한하기로 했어요.
마일과 마브리는 여관과 피난민을 지키기로 했어요.
마브리는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에일린 언니는 결정사항이라고 했어요.
저는 두 사람에게 말했어요.
"이번에는 같이 가지 않는 게 벌이 아니에요. 여기를 지키는 일이 남아서예요."
그리고 또 말했어요.
"혹시 델피 씨가 저희보다 먼저 돌아오면, 혼내지 말고 먼저 앉을 자리와 따뜻한 물을 주세요. 돌아온 사람은 문 앞에서 심문받는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와야 하니까요."
마일은 두 손 벌려 환영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웃었어요.
여관에는 비밀이 없나 봐요.
하지만 어쩌면, 비밀이 없는 곳이 돌아올 곳이 될 수도 있어요.
숨지 않아도 되는 곳.
문 앞에서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아침이
밖에 나가자 사냥개가 칼트를 보고 짖었어요.
경계하는 소리였지만, 칼트는 휘파람을 불고 눈을 맞추며 개를 달랬어요.
그 손놀림은 익숙했어요.
머리, 귀 뒤, 어깨, 등.
개는 조금씩 꼬리를 흔들었어요.
칼트는 반델프 아저씨에게 델피 씨의 냄새가 남은 물건을 달라고 했어요.
반델프 아저씨는 꼬깃꼬깃한 신발을 내주었어요.
저는 사냥개에게 육포를 주고 말했어요.
"안녕. 아침이. 우리와 함께 가는 거니?"
누가 정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렇게 부르고 싶었어요.
아침에 만났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찾는 사람에게도 아침이 필요했으니까.
아침이는 육포를 물고 달려나갔어요.
조금 뒤에는 굿베리도 먹었어요.
처음 보는 열매였을 텐데, 반사적으로 높이 뛰어올라 받아먹었어요.
칼트는 말했어요.
"자. 먹었으니 이제 일해야지."
그 말이 조금 엄격했지만, 아침이는 일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산 초입까지는 말을 타고 갔어요.
그 뒤부터는 길이 험해졌어요.
뿌리와 잔가지가 많아서 말이 넘어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칼트는 핀토를 산 아래에 두었어요.
핀토는 굿베리를 요구하듯 입을 벌렸고, 칼트는 웃으며 하나 던져 주었어요.
새벽이는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지만, 자기도 먹었어요.
저는 새벽이의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어요.
"위험해지면 먼저 도망쳐야 해. 알겠지?"
그때의 저는 아직 몰랐어요.
새벽이가 그런 말을 잘 듣지 않을 거라는 걸요.
발자국
아침이는 냄새를 따라 뛰었다가, 걸었다가, 다시 뛰었어요.
칼트는 그 뒤를 따라가며 풀과 흙을 보았어요.
레인저의 눈은 이상해요.
저에게는 그냥 흙이지만, 칼트에게는 누군가가 지나간 문장처럼 보이나 봐요.
그는 식물 뿌리 근처에서 발자국 하나를 찾아냈어요.
반델프 아저씨가 준 신발과 비슷한 크기.
인간 여성의 발자국.
그것은 산 위로 이어져 있었어요.
"어제 이곳을 지나갔군요."
칼트가 말했어요.
저는 델피 씨가 그 발자국을 남길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했어요.
혼날까 봐 무서웠을까요.
약초쟁이를 찾으러 갔을까요.
아니면 그냥 더는 숨길 수 없어서, 어디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저는 작게 말했어요.
"별일 없어야 할 텐데요."
그런데 별일은 이미 지나간 뒤였어요.
더 올라가자 나무 하나가 강제로 쓰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 주변에는 거대한 발자국들이 있었어요.
오크 뚱보의 발자국.
전에 본 그 끔찍한 발자국.
여성의 발자국은 거기서 끊겨 있었어요.
어젯밤에서 새벽 사이의 흔적이라고 했어요.
반나절은 지났어요.
저는 목이 말라지는 것 같았어요.
"빨리 찾아야 해요."
칼트의 얼굴도 굳었어요.
"빌어먹을 오크 냄새도 납니다. 제길."
그가 수신호를 보냈어요.
주변.
적.
저는 새벽이 고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어요.
매복
오크들은 숨어 있었어요.
우리가 눈치챘다는 걸 알자 소리가 터졌어요.
"눈치챘다! 죽여!"
"아니면 여자는 끌고 가! 그놈들이 말하던 게 진짜인가 보자고!"
그 말이 귀를 때렸어요.
여자.
끌고 가.
금제.
그들은 사람을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델피 씨는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한 물건 같았어요.
다른 오크가 말했어요.
"금제 안 깨진단 거 맞지?"
"당연하지. 유르투르스님의 축복이 있으니까."
유르투르스.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그 말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쁜 말도 기록해야 해요.
그래야 다음에 누군가가 그 말로 사람을 해치려 할 때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에일린 언니가 외쳤어요.
"루미엘! 적이 사방에서 옵니다! 동쪽부터! 저를 따라오세요!"
"네 에일린 언니!"
오크들이 도끼를 던졌어요.
도끼 하나가 에일린 언니의 뺨을 스치고, 또 다른 공격이 발을 노렸어요.
피가 보였어요.
에일린 언니는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어요.
칼트는 갑자기 사라졌다가 적의 옆에 나타났어요.
미스티 스텝.
푸른 냉기가 검 끝에 묻어 있었고, 오크는 마지막 말도 다 하지 못하고 쓰러졌어요.
그때 저는 새벽이에게 도망가라고 말하려 했어요.
말은 겁이 많고,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쳐야 해요.
그런데 새벽이는 가지 않았어요.
고개를 저었어요.
그리고 제 소매를 물었어요.
너 혼자 두고 가지 않겠다는 뜻처럼.
저는 순간 목이 메었어요.
"새벽이. 하늘 위로!"
저는 비행 주문을 걸고 새벽이 등에 올라탔어요.
새벽이는 마치 예전부터 하늘을 달려 본 것처럼 발굽으로 공기를 찼어요.
땅이 멀어졌어요.
나무 꼭대기가 아래로 내려갔어요.
오크들의 얼굴이 작아졌어요.
그리고 제 심장은 너무 커졌어요.
"으아아. 바람이 너무 불어! 무서워! 너무 높아!"
무서웠어요.
하지만 위에서는 보였어요.
도망치는 오크도, 에일린 언니와 칼트가 만든 전선도, 떨어진 도끼도, 쓰러진 몸도.
저는 하늘에서 마법을 쏘았어요.
"새벽의 빛님, 이 손이 미움보다 먼저 닿지 않게 해 주세요."
그 말은 제 마음을 붙잡기 위한 말이었어요.
미움은 빨라요.
기도는 느려요.
그래서 먼저 말해야 해요.
느린 것이 늦지 않도록.
전투는 거칠었어요.
에일린 언니는 방패로 오크의 손을 쳐냈고, 창으로 심장을 뚫었어요.
칼트는 거인의 자벨린을 던져 나무 위의 오크를 떨어뜨렸어요.
몇몇 도끼꾼은 전의를 잃고 도망쳤어요.
그때 에일린 언니가 외쳤어요.
"인간 여자는 어디에 있지? 여기에 있던 여자!"
칼트의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 저는 아까 노파의 방에서 보았던 칼트의 얼굴을 다시 보았어요.
창밖을 보던 얼굴.
아이를 밴 여자가 혼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말 앞에서, 피가 빠져나가던 얼굴.
칼트는 델피 씨를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만, 이미 무언가를 다시 보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그는 오크 하나의 목에 칼을 가져다댔어요.
"말해봐. 네 덕에 구한다면, 살려주지."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어요.
초조하고, 화나 있고, 아주 오래전부터 달려온 것처럼 숨이 거칠었어요.
오크는 북쪽이라고 했어요.
약초들이 있던 쉼터.
오크 뚱보들이 먼저 가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뚱보들이 여잘 덮쳐도 금제를 끌 방법이 있다고 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크의 말이 망가졌어요.
목이 부풀었어요.
숨이 막혔어요.
저는 외쳤어요.
"그만 물어요! 그러면 죽어요!"
칼트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게 했어요.
다섯이나 여섯.
도끼꾼 세넷.
그 뒤 칼트는 오크가 더 오래 고통받기 전에 끝냈어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손을 꽉 쥐었어요.
금제는 사람에게서 말을 빼앗고, 오크에게서도 말을 빼앗아요.
하지만 말을 빼앗긴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 둘을 같이 생각하는 일은 너무 어려워요.
붉은 빛
우리는 북쪽으로 달렸어요.
새벽이는 하늘을 달렸고, 저는 바람 속에서 눈을 뜨려고 애썼어요.
그때 저 멀리서 붉은 빛이 번쩍였어요.
하늘이 잠깐 어두워지고, 붉은 것이 숲 위에서 터지는 것 같았어요.
"저기, 저 멀리서! 붉은 빛이 나오고 있어요!"
에일린 언니가 긴장했어요.
저도 알 것 같았어요.
그 빛은 전에 본 것과 닮아 있었어요.
바르그.
그가 나타났을 때의 붉은 안개.
"바르그에서 나왔던 그 빛인 것 같아요."
말하고 나니 심장이 더 빨리 뛰었어요.
바르그가 델피 씨가 있는 곳에 있다면.
우리가 너무 늦었다면.
칼트는 이를 갈며 더 빨리 달리려 했어요.
에일린 언니도 멈추지 않았어요.
새벽이는 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했고, 발굽이 상할 뻔했어요.
그래도 달렸어요.
저는 새벽이 목을 붙잡고 속삭였어요.
조금만.
조금만 더.
빛님,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섭다면, 무서운 채로 한 걸음만 가게 해주세요.
약초 쉼터
붉은 빛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계속 달렸어요.
그리고 냄새가 났어요.
피 냄새.
그냥 피가 아니라, 몸 안쪽의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버린 냄새.
저는 새벽이에게서 내려 고삐를 잡았어요.
앞에는 약초 쉼터로 보이는 곳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가운데에 여자가 쓰러져 있었어요.
검은 머리.
풀어진 옷가지.
묶인 손.
재갈.
부풀어 오른 배.
델피 씨.
저는 숨을 삼켰어요.
그녀는 물건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누군가의 딸이고, 아직 이름 없는 아이의 어머니였고, 지금 너무 지쳐서 자기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오른쪽에는 오크 뚱보 하나가 시체가 되어 있었어요.
장기가 뜯기고 흩뿌려져 있었어요.
분노로 찢어놓은 것처럼.
남은 오크 뚱보들은 이상하게 조용했어요.
겁을 먹은 것 같았어요.
저는 작게 말했어요.
"이상해요. 왜 저런 분위기일까요? 겁먹었다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에일린 언니는 말했어요.
"우리에게 겁을 먹은 게 아니라면 대화는 통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도 맞았어요.
그들은 우리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바르그를 무서워하고 있었어요.
오크들이 낮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 못해. 저거 못 만져."
"바르그님 화났어."
"유르투르스님 기도도 들키나 봐."
"유르투르스님이 그룸쉬님과 손잡았단 게 진짜야."
저는 그 이름을 다시 마음에 새겼어요.
유르투르스.
그룸쉬.
바르그.
서로 다른 이름들이 한 사람의 몸 위에서 만나고 있었어요.
델피 씨의 몸 위에서.
저는 그것이 너무 싫었어요.
구출 작전
델피 씨는 혼자 달릴 수 없었어요.
임신한 몸이고, 지쳐 있었고, 묶여 있었어요.
우리가 그냥 달려들면 오크들이 그녀를 붙잡거나 해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상하고 무서운 작전을 세웠어요.
제가 새벽이에게 비행 주문을 다시 걸고, 에일린 언니가 새벽이 위에서 대기해요.
칼트는 가까이 숨어 들어가요.
그리고 미스티 스텝으로 델피 씨 바로 곁에 나타나, 그녀를 붙잡아 공중으로 던져요.
에일린 언니가 날개를 펼쳐 받아내요.
말로 하면 말도 안 되는 작전 같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가진 것이 그 말도 안 되는 작전뿐이었어요.
저는 새벽이 목을 쓰다듬었어요.
"아침 해님, 작은 손에도 내일을 잡을 힘을 주세요."
새벽이는 공중에서 대기했어요.
에일린 언니는 안장 위에서 타이밍을 재고 있었어요.
칼트는 시계태엽 아뮬렛의 힘까지 써서 은신했고, 가까이 다가갔어요.
그리고 사라졌다가 나타났어요.
델피 씨 곁에.
그녀는 칼트를 보고 몸을 뒤틀었어요.
읍, 읍읍.
재갈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무서워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어요.
그녀에게 칼트는 구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괴물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오크들에게 잡혀 있던 사람에게, 갑자기 커다란 남자가 나타나 몸을 붙잡는다면 누구라도 저항할 거예요.
저는 외쳤어요.
"델피 씨, 지금 저항하면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오크들에게 넘겨지는 거예요. 살아서 미워하세요. 지금은 칼트 씨에게 맡겨요."
살아서 미워하세요.
말하고 나서 그 말이 제 안에 남았어요.
사람은 구해준 사람에게도 화낼 수 있어야 해요.
살아 있어야 미워할 수도 있고, 울 수도 있고, 왜 그렇게 우악스럽게 했냐고 따질 수도 있어요.
죽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칼트는 델피 씨를 번쩍 안아 들었어요.
그 손길은 조심스럽다고 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정확했어요.
너무 급해서, 너무 절박해서, 그는 반말로 외쳤어요.
"받아!"
델피 씨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어요.
시간이 아주 짧게 늘어났어요.
저는 새벽이 고삐를 잡고 숨을 멈췄어요.
에일린 언니가 날개를 펼쳤어요.
갑옷 사이로 빛나는 날개가 열리고, 그녀는 떨어지는 델피 씨를 받아냈어요.
"헬름이여! 소녀를 구할 힘을!"
그 목소리가 숲에 울렸어요.
델피 씨는 아직 떨고 있었지만, 저항이 조금 줄었어요.
그녀는 에일린 언니를 보았어요.
누구인지, 무엇인지, 믿어도 되는지 살피는 눈이었어요.
저는 말했어요.
"괜찮아요. 구해주러 왔어요. 저는 아침 해님을 믿어요."
오크 도끼꾼들이 외쳤어요.
"말! 말을 죽여!"
도끼가 날아왔지만 새벽이는 피했어요.
새벽이는 정말 대단했어요.
아무도 새벽이를 그냥 말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그 아이는 오늘 하늘을 달렸고, 사람 하나와 아직 이름 없는 아이 하나를 받아낼 자리를 만들어 주었어요.
에일린 언니는 땅으로 내려오며 칼트 옆에 섰어요.
창이 오크 뚱보의 배에 박혔고, 오크는 속을 게워냈어요.
뚱보의 두꺼운 지방이 상처를 아물리려 했지만, 두 번째 공격이 너무 커서 그러지 못했어요.
남은 오크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이를 갈았어요.
고함이 터지려는 순간, 저는 델피 씨가 안장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삐를 더 세게 쥐었어요.
그 다음 일은 아직 적을 수 없어요.
아직 그 숲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은 일
델피 씨는 오크들 손에서 빠져나왔어요.
하지만 아직 안전하지 않아요.
새벽이는 날고 있고, 델피 씨는 너무 지쳐 있고, 에일린 언니와 칼트는 오크들 가까이에 있어요.
저는 싸우는 것보다 데려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바르그가 왜 그 오크 뚱보를 죽였는지, 유르투르스와 그룸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오크들이 금제를 어떻게 피하려 했는지도 알아야 해요.
알아야 할 것이 많아요.
하지만 먼저 살아야 해요.
먼저 델피 씨가 숨을 쉬어야 해요.
먼저 아이가 아침을 맞아야 해요.
먼저 반델프 아저씨가 문을 열고, 혼낼 말보다 앞에 정한 말을 해야 해요.
몸 성히.
그 말이 아직 우리 앞에 있어요.
저는 오늘도 빛님께 부탁해요.
무서운 일을 없애 달라고는 하지 않겠어요.
이미 무서운 일은 너무 많이 일어났으니까요.
다만 그 안에서, 우리가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묶인 손을 물건처럼 잡지 않게.
구출이라는 말로 상처를 덮지 않게.
도망친 사람에게 먼저 문을 열게.
그리고 하늘을 달린 새벽이에게, 돌아가면 제일 좋은 굿베리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