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엘의 기록
어제도 무서웠고, 오늘도 무서웠어요.
그런데 무서운 일만 적으면,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버릴 것 같아요.
칼트가 말을 찾으러 뛰어간 일.
에일린 언니가 모두를 지키려고 계속 서 있던 일.
마일과 마브리가 졸면서도 도망치지 않은 일.
그리고 따뜻한 귀리죽과 살구차를 다들 먹어 준 일.
무서운 일을 적는 이유는 무서움을 오래 붙잡으려고가 아니에요.
다음에 누군가를 더 빨리 붙잡기 위해서예요.
살아 있는 사람은 물을 마실 수 있으니까요.
아침이 오면요, 어제 운 사람도 다시 물을 마실 수 있어요.
꺼진 불
우리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서 야영했어요.
마을에는 죽은 사람들이 있었고, 오크들이 남긴 냄새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곳에서는 잘 수 없었어요.
숲은 아주 어두웠어요.
칼트는 자기에게 암시야 주문을 걸었어요.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주문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불침번과 함정을 준비했어요. 나무 사이에 소리가 나는 것을 설치하고,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도 말했어요.
칼트는 그런 걸 할 때 조금 달라 보여요.
말수가 적고, 얼굴은 무뚝뚝하지만, 손이 먼저 움직여요. 숲이 어디서 소리를 숨기고, 어디서 발을 걸지 아는 사람 같아요.
마일은 불을 피우면 야생동물이 덜 올 거라고 했어요.
칼트는 불이 멀리서도 보일 수 있다고 했어요.
저는 생각했어요.
따뜻한 불은 좋은 것이지만, 오늘 밤에는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해버릴 수도 있겠다고요.
그래서 말했어요.
"여기서 불을 켜고 자면, 표적이 여기 있다는 느낌이지 않을까요?"
마일은 바로 불에 흙을 덮었어요.
그 순간 제 눈앞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어요.
말들의 눈만 어둠 속에서 작게 빛났어요.
저는 마음속에 빛 주문을 준비해 두고 누웠어요.
언제든 "아침빛아, 여기로 와주세요" 하고 부를 수 있게요.
하지만 그 밤에는, 빛을 부르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붉은 눈
새벽 세 시쯤이었어요.
저는 아주 깊게 자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소리가 꿈인지 알았어요.
둔탁한 소리.
무언가 무거운 것이 숲을 헤치며 달리는 소리.
에일린 언니가 우리를 깨웠고, 모두가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움직였어요.
피를 흘리는 아울베어가 도망치고 있었어요.
저는 아울베어를 잘 몰랐지만, 그 커다란 몸이 무언가에게 쫓긴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머리 위에 붉은 표식이 떠 있었어요.
사악한 눈 하나.
그 눈은 어둠 속에서도 보였어요.
곧 한쪽 눈이 박살난 거대한 오크가 나타났어요.
그 오크는 갑자기 나온 것 같았어요. 아주 멀리서 뛰어온 것인지, 아니면 피와 안개를 타고 나타난 것인지 알 수 없었어요.
저는 빛을 켜려고 했어요.
무서우면 빛을 찾게 되니까요.
"아침빛아, 여기로 와주세요."
하지만 칼트가 낮게 말했어요.
"주문은 멈춰. 다 들릴 거다. 다 보이고."
에일린 언니도 저를 말리려 했어요.
저는 손을 멈췄어요.
빛님께 부탁하는 것도, 때로는 기다려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거대한 오크는 아울베어를 붙잡았어요.
그리고 너무 쉽게, 너무 잔인하게, 그 생명을 망가뜨렸어요.
저는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어요.
핏빛 오라.
눈이 파헤쳐진 아울베어.
그리고 바르그.
저는 그 이름을 전에 들었어요.
외눈 학살자 바르그.
그룸쉬를 따르는 자.
바르그는 뚱뚱한 오크에게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했고, 다른 오크들은 그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바르그는 핏빛 안개처럼 사라졌어요.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오크들과, 죽은 아울베어와, 우리가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숨소리였어요.
새벽의 싸움
핀토가 겁을 먹고 달아났어요.
말도 무서우면 도망쳐요.
저도 무서우면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오크들은 핀토를 쫓으려 했지만, 곧 인간이라도 잡으면 된다고 말했어요.
그 말이 더 무서웠어요.
그들에게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대신 잡아도 되는 무엇이었어요.
마일은 빛 마법을 쓸 수 있느냐는 에일린 언니의 말에 떨면서도 대답했어요.
에일린 언니가 위치를 알려 주었고, 마일은 페어리 파이어를 썼어요.
어둠 속에 있던 오크들이 빛에 감싸였어요.
그제야 저도 그들을 볼 수 있었어요.
마일은 잘했어요.
에일린 언니는 전투 준비를 명했고, 칼트는 갑옷을 다 입을 시간도 없이 검을 들었어요.
오크들이 달려왔어요.
그중 뚱뚱한 오크는 아주 컸고, 걸을 때마다 퉁, 퉁, 둔탁한 소리가 났어요.
저는 겁이 났어요.
겁이 나서, 아주 빨리 말했어요.
"어둠은 잠깐 물러나 주세요."
그리고 빛이 앞으로 나갔어요.
빛은 오크들을 밝게 감쌌어요.
최면 문양.
죽이지 않고 멈추는 빛.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대부분의 오크들이 멈췄어요.
눈이 비고, 무기가 내려가고, 달려오던 발이 멈췄어요.
순간 저는 안도했어요.
아무도 더 다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했어요.
"잠깐만요! 저 사람들 아직 때리지 말아주세요. 깨면 다시 다쳐요!"
하지만 전투는 그렇게 멈추지 않았어요.
칼트는 움직이는 오크를 쓰러뜨렸어요.
에일린 언니는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고 했어요.
저는 말했어요.
"무장해제 하고 묶으면 되지 죽일 것까진 없지 않나요?"
하지만 그 빛은 영원하지 않았어요.
1분.
아주 짧은 시간.
로프로 모두를 묶기에는 짧고, 오크들이 깨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
그들은 깨어나면 다시 공격할 거예요.
아마 사람들을 죽이러 갈 거예요.
그래도 제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았어요.
"잠깐만요. 지금은… 지금은 아무도 우리를 못 해쳐요."
저는 그렇게 말했어요.
말하고 나서 알았어요.
지금 우리를 못 해치는 것과, 나중에도 누구도 해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요.
에일린 언니와 칼트는 오크들을 끝냈어요.
제 빛에 멈춘 오크들이 죽었어요.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빛님께 부탁해서 멈춘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말했어요.
"이건 사실… 제가 죽이라고 부탁한 것과 다름없잖아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빛님께 살리려고 불렀는데요.
저는 살리려고 불렀는데요.
재생하는 오크
뚱뚱한 오크는 보통 오크와 달랐어요.
피부가 두껍고, 땀이 축축했고, 상처가 다시 붙으려 했어요.
칼트가 크게 변했어요.
칼트는 원래도 컸는데, 더 커졌어요. 뚱뚱한 오크와 맞설 만큼 커졌어요.
둘이 마주 서자, 숲 한가운데에 산 두 개가 부딪히는 것 같았어요.
에일린 언니는 방패로 칼트를 도왔어요.
뚱뚱한 오크가 칼트를 밀치려 했지만, 칼트는 버텼어요.
"흐…. 선임들보단…. 약하네!"
칼트는 그렇게 말했어요.
허세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 말이 조금 든든했어요.
저도 할 일을 해야 했어요.
"빛님, 저 사람에게 붙은 어둠만 떼어내 주세요."
하늘에서 흰금색 신성한 불꽃이 내려왔어요.
뚱뚱한 오크는 고통스러워했지만, 상처는 다시 붙으려 했어요.
칼트와 에일린 언니가 강하게, 아주 강하게 공격해야 했어요.
결국 뚱뚱한 오크도 쓰러졌어요.
전투가 끝났을 때, 우리는 살아 있었어요.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어요.
저는 말했어요.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이렇게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요."
그 말이 제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
다행인 일과 괜찮지 않은 일은 같이 있을 수 있나 봐요.
쪽지
우리는 주변을 수색했어요.
오크들의 시체가 있는 곳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었어요.
냄새가 심했어요.
그래도 저는 오크들의 품을 살폈어요.
무엇이든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쪽지를 찾았어요.
북쪽으로 도망치는 인간들을 단 한 명도 남기지 말라는 말.
숨통을 끊고, 공포로 가득 찬 눈을 뽑아 그룸쉬의 제단에 바치라는 말.
암살자는 필요 없고, 그 자리에 귀 수집가를 보냈다는 말.
저는 그 글을 읽는 동안 얼굴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이건 그냥 무서운 오크들이 아니었어요.
북쪽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러 가는 중이었어요.
우리가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다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죽어요.
그럼 제가 살리려고 한 빛이, 다른 사람들을 죽게 두는 빛이 돼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말했어요.
"기도는 할게요. 그래도 멈춘 건… 맞았던 것 같아요."
아직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저는 괜찮지 않았어요.
그래도 필요했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오크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과, 저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이러 가게 두지 않는 건 같이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저에게도 하는 말이었어요.
핀토
칼트는 핀토를 찾으러 가고 싶어 했어요.
그 말은 겁을 먹고 도망쳤지만, 칼트에게는 그냥 말이 아니었어요.
저는 칼트에게 말했어요.
"칼트 씨는, 만약에 말을 찾지 못한다면 저와 같이 새벽이를 타고 가요. 새벽이도 두 사람은 태울 수 있을 거예요."
칼트는 말에게 불쌍하지 않겠냐고 했어요.
저는 새벽이가 저 하나만 태우면 심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칼트는 핀토를 찾아야 했어요.
저는 칼트의 손을 잡고 물었어요.
"손 잡아도 돼요? 빛님께 같이 부탁해볼게요."
빛님께 부탁했어요.
칼트는 시계처럼 작은 소리가 나는 펜던트를 쥐고 길을 찾았어요.
그리고 핀토를 찾아냈어요.
핀토는 칼트를 보자 달려왔고, 머리를 비볐어요.
칼트는 정말 기뻐 보였어요.
그때 칼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어렸어요.
아마 피 묻은 전사도, 말을 찾으면 아이처럼 웃을 수 있나 봐요.
그래서 에일린 언니가 물었어요.
칼트는 올해 몇 살이냐고요.
칼트는 성인이라고 했어요.
골리앗은 열다섯부터 성년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생일이 2주 전에 지났다고 했어요.
마브리와 거의 동갑이었어요.
저는 나이를 잘 몰라서 제가 성인일 거라고 했지만, 에일린 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말했어요.
"마브리는 일주일 차이, 칼트 아저씨는 길 떠난 날… 그러면 오늘은 둘 다 조금 축하해도 되는 날인가요? 그럼 오늘 밥은 조금 더 따뜻하게 먹어요. 생일이든 아니든, 살아서 같이 있으니까요."
그러자 에일린 언니는 칼트를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연습하기로 했어요.
칼트.
칼트는 크니까요.
아침밥
긴 잠은 못 잤어요.
모두 피곤했어요.
그래도 아침은 왔어요.
저는 밥을 만들었어요.
묽지만 따뜻한 귀리죽.
말린 고기와 염장육을 잘게 찢어 넣은 국물.
굿베리를 으깨 살짝 섞은 새콤한 소스.
딱딱한 여행빵을 불에 데운 것.
향신료 주머니에서 꺼낸 계피와 허브 조금.
그리고 말린 살구 조각을 우린 과실차.
아침에는 입 안에 어제 냄새가 남아 있으면 안 돼요.
피 냄새와 재 냄새와 무서운 말들이 입 안에 남아 있으면, 오늘을 시작하기 어려워요.
따뜻한 걸로 씻어내야 해요.
칼트는 굿베리만 먹으면 된다고 했어요.
굿베리 하나면 하루 종일 배가 부르다고요.
그건 아주 편한 마법이에요.
하지만 저는 말했어요.
"그럼 굿베리는 간식으로 하고, 밥은 밥으로 먹어요. 둘 다 먹으면 더 안 쓰러져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어요.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서 같이 먹는 것도 중요해요."
에일린 언니는 제 식사를 맡기자고 했어요.
저는 기뻤어요.
칼트는 아무 말 없이 계속 먹었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칼트가 아무 말 없이 계속 먹으면, 맛있는 거 맞죠?"
마브리는 싹 비웠다고 보여 주었고, 마일도 잘 먹었어요.
에일린 언니는 오늘도 맛있게 먹어 주었어요.
저는 언니가 늘 맛있게 먹어 주어서 고마웠어요.
핀토와 새벽이도 먹였어요.
칼트는 핀토에게 몰래 굿베리를 하나 먹여 주었어요.
핀토는 아주 힘이 나 보였어요.
저는 새벽이를 쓰다듬었어요.
말도 밥을 먹어야 해요.
말도 동료니까요.
북쪽 길
우리는 북쪽으로 갔어요.
쪽지에 북쪽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적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사람들이 있었어요.
비루한 말 한 마리에 짐을 싣고, 급하게 도망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우리를 보고 처음엔 도적이나 오크인지 의심했어요.
무서웠을 거예요.
무서운 사람은 아무나 믿을 수 없어요.
에일린 언니는 건틀릿 기사단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성표를 내밀었어요.
"저는 아침 햇님의 말을 듣는 사람이에요."
한 할머니가 제 손을 잡았어요.
아침의 군주를 불렀고, 우리는 살았다고 했어요.
그 손은 늙고 마르고 떨리고 있었어요.
저는 말했어요.
"괜찮아요. 저희가 보호할게요."
그리고 더 말했어요.
"이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아침이 왔으니까. 어제 운 사람도 다시 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그 말이 정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피난민들은 여러 마을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정하지 못한 것 같았어요.
저는 목적지가 있는지 물었어요.
하지만 대답을 듣기 전에, 바람의 공기가 바뀌었어요.
오크 냄새가 났어요.
귀 수집가
오크 도끼꾼들이 나타났어요.
그들은 말했어요.
그냥 갈 길을 가라고.
서로 못 본 것으로 하자고.
그 말은 이상했어요.
그들은 무서워하고 있었어요.
우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어요.
저는 생존자들에게 뒤로 오라고 했어요.
"괜찮아요. 저희 뒤로 오세요. 뛰지 말고, 숨부터 쉬어요."
그리고 오크들에게 말했어요.
"저희가 가려는 길이 이 사람들이 살아서 가는 길이에요. 비켜드릴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 사람들까지 지나가게 해주셔야 해요."
오크들은 귀 수집가가 온다고 했어요.
제가 쪽지에서 본 이름.
그 이름이 눈앞으로 오는 것 같아서, 손끝이 차가워졌어요.
곧 귀 수집가가 나타났어요.
그는 혼자였어요.
하지만 혼자인데도 모두를 더 조용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몸에는 귀를 꿰어 만든 목걸이가 있었어요.
엘프 귀와 인간 귀.
그리고 작은 귀.
아이의 것처럼 작은 귀.
저는 숨을 삼켰어요.
귀 수집가는 자기 편인 오크의 귀도 쉽게 찢어냈어요.
오크가 비명을 질렀어요.
저는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어요.
"뒤로 가세요. 귀 막고, 제 뒤에 있어요."
사람들은 제 말을 들었어요.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빨리 따르라고 했어요.
귀 수집가는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했어요.
그는 우리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저는 말했어요.
"귀 수집가라면… 더더욱 못 지나가요. 이 사람들은 당신의 전리품이 아니에요."
그가 소리쳤어요.
전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알았어요.
이번에는 그냥 무서워서 빛을 부르는 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을 제 뒤에 세웠으니까요.
저는 약하지만, 빛은 약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