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엘의 기록
저는 잘 잊어버리는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중요한 일들은 그냥 마음속에만 두면 모양이 흐려져요. 아침에 먹은 밥의 따뜻함도, 가이블 오빠가 걱정하던 얼굴도, 에일린 언니가 깃발을 받아 들던 순간도요.
그리고 오늘은 피 묻은 편지도 있었어요.
그건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되는 말이에요.
그래서 적어 두기로 했어요.
좋은 아침
오늘은 좋은 아침으로 시작했어요.
세버린 대장님이 우리 앞에 서 계셨고, 건틀렛 결사의 병사들이 양옆에 줄을 맞추고 있었어요. 모두가 우리를 보고 있어서 조금 긴장됐어요.
하지만 아침밥을 많이 먹고 나왔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배가 따뜻하면 마음도 조금 덜 덜컹거리거든요.
대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좋은 아침이지."
그래서 저는 대답했어요.
"네. 좋은 아침이에요. 아침밥도 많이 먹고 나왔어요."
그때는 몰랐어요.
아침이라는 말이 오늘 하루 끝까지 저를 따라올 줄은요.
제 옆에는 에일린 언니가 있었어요. 에일린 언니는 늘 반듯해요. 마치 깃발이 사람이 된 것처럼 서 있어요. 보고서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 길어지지만, 그래도 그게 에일린 언니의 멋진 점이에요.
그리고 칼트 아저씨도 있었어요.
처음 보았을 때는 정말 컸어요. 고개를 많이 들어야 얼굴이 보였어요. 이름도 아주 길었어요. 칼트 널... 후... 저는 아직 한 번에 잘 못 불러요.
그래도 좋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아침 해님이 속삭여 주셨거든요.
오늘 멋진 만남이 있을 거라고요.
가이블 오빠의 걱정
가이블 오빠는 저를 보자마자 걱정하는 얼굴을 했어요.
가이블 오빠는 말을 장난처럼 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정말 걱정할 때는 눈가가 조금 달라져요. 웃고 있어도 마음은 웃지 않는 얼굴이에요.
오크들이 있는 곳은 위험하다고 했어요.
옆에 아주 든든한 언니와 키 큰 아저씨가 있어도 위험하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이 맞는 말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해님이 말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요. 할 수 있는 데 하지 않는 건 해님의 말씀을 어기는 거라고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도 말했어요.
"도움만 받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훨씬 행복한걸요."
이건 기도문에 적힌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따뜻한 밥을 먹어 보면 알 수 있어요.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것을 주면,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이블 오빠는 저에게 치유 물약과 성수를 챙겨 주었어요.
해님표 마크가 새겨진 성수였어요. 가이블 오빠가 직접 축성한 거라고 했어요.
저는 그것들을 조심히 챙겼어요.
"제가 아무도 아프지 않게 해줄 거예요."
말하고 나서 조금 무서웠어요.
아무도 아프지 않게 한다는 건, 제가 들 수 있는 책보다 훨씬 큰 말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빛님께 부탁하면, 적어도 누군가의 아픔을 조금은 덜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어요.
가이블 오빠가 제 머리를 마구 헝클었어요.
아침에 정리하고 나왔는데요.
그래도 저는 참았어요. 축복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제는 무서웠지만, 오늘은 오늘이에요. 축복해 주었으니 이제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은 가끔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괜찮아지고 싶어서 하는 말일 때도 있어요.
새벽이
우리는 말을 받았어요.
에일린 언니의 말은 이름부터 아주 빨라 보였어요. 칼트 아저씨의 말은 칼트 아저씨를 보고 많이 놀랐고요.
그리고 제 앞에는 검은 말이 있었어요.
저는 가이블 오빠에게 물었어요.
"이 말 엘라드 아저씨가 좋아해 줬던 말일까요?"
가이블 오빠는 영혼의 파트너였다고 했어요.
엘라드 아저씨.
사람들은 그 이름을 말할 때마다 저를 봐요.
그런데 가끔은 저를 보는 게 아니라, 제 뒤에 있는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럴 때 마음이 조금 이상해져요.
저는 엘라드 아저씨를 기억하지 못해요.
그분의 얼굴도, 목소리도, 검을 들던 손도 몰라요. 루르크우드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전투가 제 안에서 문을 열지는 않아요.
저는 루미엘이에요.
그래도 엘라드 아저씨가 좋아했던 말이라면, 저도 잘 지내고 싶었어요.
저는 그 말의 이름을 새벽이라고 부르고 싶었어요.
밤을 지나서 오는 이름이니까요.
"새벽이가 나를 좋아해주면 좋겠어요."
새벽이는 저를 아직 잘 모르는 눈으로 보았어요.
괜찮아요.
저도 저를 아직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마일과 마브리
출발하기 전, 마브리와 마일을 만났어요.
마브리는 아주 씩씩했어요. 에일린 언니와 엘라드 아저씨를 많이 존경하는 것 같았어요.
마일은 조금 긴장한 목소리였지만, 빛마법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둘은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자꾸 싸웠어요.
마브리는 자기가 더 적합하다고 했고, 마일은 자기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다 마브리가 마일을 힘으로 제압했어요.
마일의 얼굴이 울먹이는 얼굴이 되었어요.
저는 마브리를 잡아서 끌어냈어요.
"힘으로 이겼다고 좋아하는 건 아이나 하는 짓이에요."
말하고 나서 조금 이상했어요.
저도 아직 아이인데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어요. 힘은 누군가를 눕혔다고 자랑하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마일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고 일으켜 세웠어요.
"마일도 힘으로 졌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다들 잘하는 게 다른 법이니까요."
처음에는 둘 중 한 명만 데려가야 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어요.
마일만 가면 마브리가 계속 걱정할 것 같았어요. 마브리만 가면 마일이 혼자 슬퍼하고 무서워할 것 같았어요.
둘이 같이 있으면 서로 덜 무서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말했어요.
"마일은 마법을 알아요. 마브리는 앞에서 지켜줄 수 있어요. 그런데 마일만 데려가면 마브리는 계속 걱정할 거고, 마브리만 데려가면 마일은 혼자서 슬퍼하며 무서워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둘이 같이 있으면 서로 덜 무서울 거예요."
세버린 대장님은 아이들을 전쟁터에 데려가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말씀하셨어요.
유용성만 따지면 모든 헬름차일드의 고아들을 전쟁터에 데려가야 한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어요.
제 말이 그렇게 들렸다면, 제가 잘못 말한 거예요.
"쓸모 있어서 데려가자는 말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들렸다면 제가 잘못 말했어요."
사람은 쓸모 때문에 데려가는 게 아니에요.
같이 돌아와서 밥을 먹고 싶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물론 그것이 언제나 맞는 선택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에일린 언니가 세버린 대장님을 설득했어요.
언니는 두 견습이 서로를 지킬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헬름께 맹세했어요.
세버린 대장님은 에일린 언니에게 헬름의 깃을 맡기셨어요.
깃발에 빛이 깃들었고, 병사들이 경례했어요.
칼트 아저씨는 조금 울 것 같은 얼굴이었어요.
물론 칼트 아저씨는 안 울었다고 할 거예요.
저는 가이블 오빠에게 말했어요.
"둘 다 밥도 제때 먹이고 잘 보살필게요."
가이블 오빠는 내일의 아침을 기대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출정 의식이 있었어요. 악한 존재를 살피는 주문이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사악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 말이 좋았어요.
우리 중 누구도 사악하지 않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돌아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엘라드 아저씨처럼은 못 해도, 루미엘처럼은 해볼게요."
그리고 저는 새벽이에게 말했어요.
"새벽아. 오늘도 밤을 지나서 가보자."
루르크우드로 가는 길
길은 길었어요.
밤에는 바람이 차가웠고, 마일은 칼트 아저씨에게 나이를 물었어요. 마브리는 제게 정말 전생의 기억이 없냐고 자꾸 물었어요.
저는 없다고 했어요.
정말 없으니까요.
엘라드 아저씨가 멋진 분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그분이 저라고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요. 제가 모르는 이름으로 칭찬을 받는 것도, 제가 모르는 슬픔 때문에 누군가 저를 조심스럽게 보는 것도, 손에 맞지 않는 장갑 같아요.
저는 루미엘이라고 편하게 불러 달라고 했어요.
조용한 마을
마을에 도착했을 때, 너무 조용했어요.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였는데, 사람이 사는 소리가 없었어요. 밥 짓는 냄새도 없고, 아이가 뛰는 소리도 없고, 문을 여닫는 소리도 없었어요.
대신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어요.
처음에는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시체를 보았어요.
얼굴이 망가져 있었고, 눈 하나가 강제로 뽑힌 것 같았어요.
저는 숨이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사람의 몸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눈으로 아는 건 달랐어요.
무서웠어요.
그래도 버텨야 했어요.
"지금은 무섭지만, 괜찮아요. 아직 견딜 수 있어요."
오크가 보였어요.
저는 바로 그 오크가 죽였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오크 씨가 죽인 게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순진한 말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때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괴물이라고 부르면, 그다음에는 더 묻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아직 묻고 싶었어요.
왜 그랬는지.
정말 그랬는지.
혹시 다른 길은 없는지요.
전투
오크들은 우리를 보고 달려들었어요.
전투는 생각보다 훨씬 시끄럽고, 훨씬 가까웠어요.
칼트 아저씨는 문을 막았고, 에일린 언니는 앞에서 명령했어요. 마브리와 마일은 뒤에서 움직였어요.
저는 빛님께 부탁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오크가 너무 가까이 왔어요.
입냄새가 날 정도로 가까웠어요.
집중이 흐트러졌어요.
조금 창피했어요.
하지만 창피할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오크들은 계속 나왔고, 위험했어요.
오크 하나가 저를 보고 침을 흘렸어요. 저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마일의 얼굴을 보고 좋은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저는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멈추게 하고 싶었어요.
더 다친 사람이 생기지 않게, 잠깐이라도 돌진을 멈추게 하고 싶었어요.
"괜찮아요, 제가 잡고 있을게요."
저는 커다란 성서를 꼭 쥐고 빛님께 부탁했어요.
"빛님, 저들의 돌진을 막아주세요."
그러자 색이 피어났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양이었어요. 아침노을 같기도 하고, 물 위에서 부서지는 햇빛 같기도 했어요.
오크들의 눈이 그 빛을 따라 멈췄어요.
몸이 굳고, 무기가 내려갔어요.
그때 저는 안도했어요.
죽이지 않고 멈출 수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룸쉬의 금제
전투가 끝난 뒤, 살아 있는 오크들을 묶었어요.
저는 고문하고 싶지 않았어요.
괴롭히면서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들은 묶였고...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말해줘요. 누가 시킨 거예요?"
오크들은 웃었어요.
그 웃음은 사람을 찌르는 것 같았어요.
그들은 그룸쉬를 말했어요.
가장 위대한 외눈의 학살자.
모든 오크들의 아버지.
그리고 바르그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외눈 학살자 바르그.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어요.
오크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렀어요.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어요.
그다음은 너무 빨랐어요.
턱이 이상하게 벌어지고, 혀가 갈라지고, 눈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어요.
에일린 언니가 얼른 제 눈을 가려 주었어요.
하지만 손바닥 너머로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몸이 망가지는 소리.
피 냄새.
누군가 더는 말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저는 정보를 얻고 싶었어요.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질문이 그들을 더 아프게 만든 것 같았어요.
"아... 이렇게 괴롭힐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해요."
칼트 아저씨는 고통받는 오크들을 끝내 주었어요.
그게 맞는 일이었는지는 아직 어려워요.
하지만 그때 그들은 이미 말도, 듣는 것도, 살아 있는 것도 빼앗기고 있었어요.
저는 빛님께 아주 작게 부탁했어요.
저 사람들이 한 일은 나쁜 일이지만, 고통만 끝없이 남는 것은 싫다고요.
사람을 먹는다는 것
나중에 알았어요.
오크들이 내던 둔탁한 소리는 나무를 부수는 소리가 아니었어요.
사람의 뼈를 씹고 부수는 소리였어요.
저는 물었어요.
"오크가 사람도 먹는 거였어요?"
제 목소리가 너무 어리게 들렸어요.
하지만 정말 몰랐어요.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무서운 일이 많았어요.
아침밥을 먹은 몸으로도, 축복받은 머리로도, 막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어요.
레일에게 가는 편지
우리는 생존자를 찾았어요.
그리고 마을 깊은 곳에서 한 남자를 발견했어요.
그는 팔 한쪽이 뜯겨 있었고, 편지를 쥐고 있었어요.
가장 최근까지 살아 있었을 것 같은 시신이라고 했어요.
저는 상처를 보았어요.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지혈을 했다면.
치유를 했다면.
"고통 속에서도 뭘 남기려고 했을까요.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치유를 해 주었을 텐데요."
그는 지혈하지 않았어요.
자기 피를 막는 대신 편지를 썼어요.
그리고 편지를 주변에 던지고, 자기 시신을 숨기려고 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하지 못했어요.
중간에 죽었기 때문이에요.
편지는 딸에게 가는 말이었어요.
레일에게.
오크들이 몰려오고 있으니 집에 오지 말라고.
왔다면 바로 도망치라고.
이 아비는 잘 살아 있을 테니, 나를 찾지도 말라고.
저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어요.
나를 찾지도 마라.
그런 말은, 찾으러 올 걸 아는 사람이 쓰는 말이에요.
그 사람은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레일을 살리고 싶어서 자기 피를 못 막은 거예요.
죽기 싫었을 거예요.
아팠을 거예요.
무서웠을 거예요.
그런데도 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게 하려고 마지막 힘을 썼어요.
마일은 죽음을 알리지 말자고 했어요.
그 마음도 알 것 같았어요.
편지는 칼보다 아플 수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에게 죽은 사람의 말을 전하는 일은, 상처를 다시 여는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알리지 않으면, 레일은 평생 찾을지도 몰라요.
희망이 사람을 살릴 때도 있지만, 어떤 희망은 아주 오래 아프게 할 수도 있어요.
저는 말했어요.
"그렇지만, 알리지 않으면 평생 따님이 찾아다닐지도 모르잖아요. 신의 곁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희망 속의 고통을 안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나요?"
말하고 나서도 마음이 아팠어요.
제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어른들도 이런 건 잘 모르는 얼굴이었어요.
그래도 그 편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은...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에요. 레일을 살리고 싶어서, 자기 피를 못 막은 거예요."
저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었어요.
피 묻은 부분을 함부로 닦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쓰인 시간이었어요.
"아침이 와도 안 돌아오는 사람은 있지만, 그래도 이 말은 돌아가야 해요. 레일에게."
편지를 품에 넣었어요.
아주 가벼운 종이인데, 제 성서보다 무겁게 느껴졌어요.
"이 편지는 죽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어야 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이에요. 제가 잃어버리지 않을게요."
오늘 배운 것
오늘 저는 알았어요.
아침은 모든 사람을 데려오지 못해요.
아침이 와도 안 돌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기도해도 늦는 순간이 있고, 아무리 빛이 따뜻해도 이미 식은 손이 있어요.
그래도 아침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에요.
아침은 남은 사람이 물을 마시게 해요.
울던 사람이 숨을 쉬게 해요.
죽은 사람이 남긴 말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옮기게 해요.
그리고 보고서에 이렇게 쓰게 해요.
오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저는 엘라드 아저씨처럼은 못 해요.
검으로 길을 막고,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까지 서 있는 법은 몰라요. 그 기억도 없어요.
하지만 루미엘처럼은 해볼 수 있어요.
마일과 마브리에게 밥을 먹이고.
에일린 언니의 깃이 쓰러지지 않게 옆에 서고.
칼트 아저씨가 너무 무서운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게 보고.
새벽이의 목을 쓰다듬고.
죽은 아버지의 편지를 레일에게 가져가는 일.
그런 일이라면.
빛님, 제가 해볼게요.
내일도 아침이 올 테니까요.
다음에 잊지 말 것
레일을 찾아야 해요.
편지는 그냥 건네면 안 될 것 같아요. 레일이 혼자 읽게 하면 너무 아플 것 같아요. 가능하다면 옆에 앉아 주고 싶어요.
바르그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해요.
그리고 그룸쉬의 금제도 기억해야 해요. 다음에는 그냥 묻기 전에, 그 말을 하면 상대가 더 아파지는지부터 생각해야 해요.
마일과 마브리는 아직 무서워해요.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어요.
에일린 언니는 모두를 지키려고 했고, 칼트 아저씨는 아주 무서운 일을 끝내 주었어요.
저는 오늘 그걸 보고서에 쓰고 싶어요.
오늘은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고요.